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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Feb 20. 2023

SNS처럼 잘난 건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범인들이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를






 늦은 아침, 내가 일어나서 침대에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카카오톡 뷰에서 쓸데없는 연예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는 것이다. 얼마짜리 집을 구매했다는 둥, 잘난 사람들의 세상을 대강 훑어보면서 누구보다도 비참해진 듯한 기분에 취한다. 이것도 SNS의 폐해라면 폐해일까. 어느 하나 득 될 것도 없는 이상한 취미 앞에서 나는 어쩌면 자학을 즐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실상 나를 둘러싼 주변 세계는 범인(凡人)으로 가득 찬 곳이다. 평범하고 또 평범한, 특출나거나 잘난 게 거의 없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세계. 생김새부터 시작해서 재능까지 뭐 하나 대단할 게 없는 것은 일반인에게 있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 잘난 자들을 향한 부러움과 열등감은 거둘 수 없는 것일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도 뭔가에 재능이 있긴 했었다. 단지 그것을 키워낼 인내와 환경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예를 들면, 중학교 1학년 때, 지옥 같은 입시학원을 그만두고 갑자기 발레를 하겠다며 발레 학원을 다니게 된 일이 있었다. 학원을 다니기 전부터도 다리 찢기는 가능했고 학교 요가 취미반에서는 선생님의 눈에 띄어 시범 학생으로 앞에 서기도 했으니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학원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발레 동작을 배우고 훈련하는 일은 확실히 할 만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자 원장 선생님은 내게 유연함이 타고 났으니 입시 준비를 시작해 보라고 제안해 주셨다. 그 제안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공부를 별로 안 해도 될 것 같으니 한번 해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사고를 당했다.  





   

 방에 걸어두었던 A4용지 사이즈의 액자가 자꾸 떨어지던 , 엄마가 그것을 버리려고 낮은 테이블에 올려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옆에는 발로 밟아 뚜껑을 여는 휴지통이 있었다. 어느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려고 다리를 올렸다가 내리는 순간, 액자의 날카로운 끝부분에 무릎이 찢겨나갔다. 찌릿한 감각에 무릎을 감싸고 바닥을 뒹굴었고 점점 운동복 바지를 적셔오는 핏물에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길게 났다. 그리고 무릎을 꿰매는 응급조치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후부터 문제가 생겼다.





     

 상처는 흉터를 남겼고, 무릎이 찢어지는 순간이 수시로 떠오르는 끔찍한 강박사고가 생겨버렸다. 그러자 이제 다리를 쓰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치료가 끝나갈 즘 학원으로 돌아오라는 전화가 몇 번이나 왔지만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흉터는 예상보다도 심하게 났고 사람들에게 흉진 다리를 보여주는 것도 싫어서였다. 그렇게 결국 입시 준비 제안을 받았던 발레 학원에서는 멀어지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그 힘든 상황을 조금만 이겨낼 수 있었다면, 내 진로는 달라졌지 않았을까 싶다. 굳이 합리화를 해보자면 어차피 발레로 전공을 나갔어도 키가 160cm가 넘지 않아서 불리했을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발레를 계속했더라면 지금쯤 뭐라도 해서 먹고살았을 거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착잡해지기도 했다. 결국엔 그동안의 내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현재 나는 33살 백수, 재능은 약간 있었을지 모르지만 건강 악화로 무너져버린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대학 시절 배워둔 전공 지식도 거의 다 잊어버려 뇌주름을 다림질한 것처럼 깨끗한 두뇌로 살고 있으니, 범인 중에서도 그다지 상태는 좋지 않은 범인인 것 같다. 한 마디로 정말 잘난 것도 없고 잘나질 수도 없이 살아왔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런 내가 카카오톡 뷰의 연예인 기사를 보면서 범인으로서의 아쉬움과 비참함을 느낄 자격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보통의 직장인, 회사원이라도 되었더라면 덜 느꼈을 고통을 사서 느끼며 자학을 즐기는 내 모습에 삶을 부정해 보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건 환기조차 잘 시키지 않는 작은 내 방의 퀴퀴한 냄새뿐이다. 노트북 앞에 앉아 오래된 엑셀 책을 공부하다 보면 간단한 엑셀조차 빠르게 습득하지 못하는 이 범인의 능력에 한탄이 가득 쏟아져 나온다. 나는 왜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범인이라는 인간 분류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끝없는 진로 고민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에도 다시 한번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다 사는데 왜 네가 못 살아?”


하고 소박한 희망을 심어주는 말을 건네보는 중이다. 내게는 큰 재능이 없어도 꼭 잘나지 않아도 다 먹고 살아가는 범인들의 예시가 주변에 넘치고 넘치니, 그들이야말로 내가 매일 아침 봐야 할 뷰가 아닐까. 카카오톡 뷰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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