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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Feb 12. 2023

학교생활기록부를 읽어본 적 있나요?

다시 보니 새로운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취업을 준비하던 어느 날, 기업에서 내 생기부(생활기록부)를 열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동안 생활기록부를 열어본 적이 있었던가? 12년간의 나의 학교생활 평가는 어떻게 쓰여있을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생기부 열람을 검색해 보았는데, 한 사이트에서 공인인증서로 로그인만 하면 본인의 생기부를 pdf파일로 열어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초, 중, 고를 차례로 다운로드했더니 생년월일을 비밀번호로 치고 가볍게 열어볼 수 있었다. 나의 학생 시절은 어떻게 나와 있었을까?     




초등학교

 먼저 초등학교 6년의 생기부를 열어보았다. 다행히도 성적은 교과학습발달사항 외에는 나와있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봉사활동이나 수상기록 등을 제외하면 내용은 거의 없었지만 선생님들의 종합의견으로는 대체로 ‘조용하지만 급우들과 잘 어울리고, 노력하는 학생’이라고 나와있었다. 역시나 큰 사고 치는 일 없이 잘 지나갔던 게 내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이랄까.   





중학교

 문제는 중학교 3년부터였다. 나는 중학생 때 학교 부적응을 한 학생이었다. 전교에 친구가 단 1명뿐이었던 시기도 있었을 정도로 철저히 인간관계를 회피하며 겨우 학교를 다녔던 시기였기 때문에 생기부가 어떨지 가장 궁금했다. 먼저 성적부터 보자면, 그것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과목별 성적 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징은 체육이 언제나 1등급.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몸은 튼튼해야 날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때문일까. 역시나 썩 성적이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그리고 걱정했던 선생님들의 종합의견은 조금 나를 슬프게 했다. ‘내성적임’, ‘좀 더 적극성이 요구됨’, ‘의욕적으로 생활하면 좋겠음’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날 보시며 안타까움을 느끼셨나 보다. 그래도 예상만큼 악평은 아니어서 그나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3년의 생기부. 나는 3년을 지각 한 번 없이 개근하여 개근상을 받았다. 야호. 성적은 하나하나 살펴보니 그다지 형편이 없었다. 그래도 1학년 겨울방학에 대학입시 목표 수립후, 내신성적 향상을 위해 노력한 것이 티가 났다. 의외로 생기부를 보며 깨달은 건, 내가 이런 성적에도 그나마 수시로 대학교를 잘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정시 실력으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건 알고 있긴 했는데, 어쩌면 20대의 운을 모두 대학합격에 써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종합의견에는 일본어에 관심이 많고(오타쿠였다), 외국어 교과 성적이 매우 우수하다고 나와있었다. 고등학교로 갈수록 영어나 일본어 등의 외국어에 소질이 있는 전형적인 문과형 학생이었음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진로희망의 변천사

 웃긴 점은 초, 중, 고를 거치며 진로희망이 계속 바뀌었다는 점이다. 초등학생 때는 멋모르고 의사, 경찰을 희망했고, 중학생 때는 조용한 성격이라 공무원과 번역가를 원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사업가, 투자가, 번역가가 꿈이었던 나였다. 그런데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나 역시 어린 시절의 진로희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은 33살 백수, 취준생이다. 눈물 또르르.  





        

그나마 예나 지금이나 내게 있어 변하지 않은 건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학생 시절 교내 글쓰기나 독후감 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받은 기록이 나와있는 걸 보니 이렇게 조용히 커서 브런치 작가가 되려고 그랬나 보다. 그래, 뭐라도 됐으면 된 거지. 어릴 땐 어른이 되면 뭐든 딱딱 쉽게 정해지고 살아지는 줄 알았더니 실제로 커보니 여전히 진로 고민 앞에 서있는 게 참 애석하다.       






 절망에 흠뻑 젖어 있을 시기에는 지금까지 해낸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나는 초, 중, 고, 대학교까지 모두 잘 버텨내고 졸업까지 이뤄낸 한 사람의 예비 사회인이다. 중도에 단 한 번도 유급하거나 자퇴한 적 없이, 이렇게 약하고 아픈 몸과 정신으로도 잘 이겨내었으니 충분히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을 듯하다. 오늘은 재차 생기부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내 과거에 대한 악평을 그만 거둬내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생 때도 나름대로 성적장학금을 5번 받은 걸 확인했으니 스스로 칭찬해 줘도 좋지 않을까. 여전히 난 가벼운 완벽주의자지만 이제는 꼭 1등급이 아니어도 괜찮다. 정말로 내가 잘 살았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귀한 오늘을 드디어 맞이했으니까.            





※ 참고: 초, 중, 고 학교생활기록부는 나이스 홈에듀 민원서비스에서 공동인증서(구,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 날 때 한번 읽어보시면 재미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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