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형국의 불바다 취준생
올해 들어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1월 내내 내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생산직 회사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연락 오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주변에서는 생산직에 대졸자를 채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고, 고졸로 쓰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채용 사이트에서 계약직 사무보조를 뽑는다는 문자가 날아와서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고민 없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써서 입사지원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며칠 후, 그 회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면접 일정을 잡을 전화가 올 것이니 꼭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한껏 들뜬 마음으로 주말 동안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미리 해두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며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찍 일어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침 7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긴장 속에 월요일이 되었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이튿날, 하루 종일 전화를 기다렸지만 또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수요일, 이날은 오겠지 했는데 결국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수요일 오후 1시쯤 되자 역시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솔직히 첫술에 배부른 게 이상한 일이지만 내심 기대가 컸는지 많이 낙심했었다.
그리고 목요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채용팀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 보았는데, 상당히 어이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검토 중이라서 이번 주 금요일까지 기다려보시고 혹시 전화가 없으면 떨어졌다고 아시면 됩니다.”
사람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놓고선 다른 소리를 하더라니. 금요일까지 기다리란 말은 사람을 두 번 고통 주는 말처럼 들렸다.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지난주에는 대체 왜 전화를 한 걸까?
금요일이 되자 역시나, 오후 6시까지도 전화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이미 그전에 마음을 정리한 상태긴 했지만, 지원 내역에서 그 회사를 삭제함으로써 복수하여 조금이나마 마음의 화를 덜어내기도 했다. 어머니는 누가 경력 없는 33살을 뽑겠냐는 핀잔을 늘어놓기도 하셨고 아버지는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나 또한 민망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말을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니, 정말이지 나 같아도 무경력의 33살을 채용하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생과 취준생 시절에 하던 고통스러운 스펙쌓기에 도전해야 하나 또 고민이 되었다. 먼저 가장 빠르게 딸 수 있는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을 준비하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노트북을 켜고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니 오픽 시험의 응시료가 무려 84,000원으로 올라있었다. 이 돈을 써가면서 일주일을 달달 스피킹 연습을 해서 레벨을 받았다 쳐도 취업이 되려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좀 더 생각하기로 하고 슬쩍 브라우저 창을 닫아버렸다.
침대에 누워서는 다시 괴로운 취준생이 되고, 직장인이 된다는 것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기만 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확신을 얻을 방법을 궁리하다가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다 온라인 사주 상담을 검색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흐름이 이어지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니 30분 사주 및 고민 상담을 받고 있는 걸 보고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제 버튼을 눌러보았다. 그리고 직업 문제를 적고 예약 전화를 조용히 기다렸다.
20분 정도 있다가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인사를 나눈 뒤, 선생님이 내 사주를 풀어보았더니 참으로 ‘답답한 형국’이라고 하시는 걸 들었다. “왜요?”라는 대답도 하기 전에 술술 나오는 내 사주풀이들. 그야말로 사주 구성이 불바다라 화가 가득해서 직장운도, 남편운도 없을 것이니 평범한 직장 생활은 바라지 말라셨다. 띠용. 나는 보스고 우두머리이니 장사나 사업을 할 감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이렇게 아프고 그릇이 작은 내가?
그에 따르면, 내 직장 생활은 올해 시작은 할지 몰라도 몇 달이 채 가지 못할 것이며 내년부터는 5년간 더더욱 직장에 못 붙어있을 것이라고 한다. 공무원을 해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할 일이 없는 사주라고 한다. 힘든 팔자지만, 다만 살다가 잘 풀릴 때가 있는데 빠르면 30대 후반, 늦으면 44살부터 재물이 잘 들어올 것이니 그때까지 잘 버티라 하셨고 이쯤 되니 솔직히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물론 나는 이미 예전에 몇 차례 사주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언뜻 비슷한 내용을 들은 기억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솔직한 직구로 말씀해 주시는 건 처음 들었다. 그렇게 힘을 내라는 응원과 함께 10분 더 연장된 통화를 끝내고 나서는 조금 멍해져서 밖에 나가 벤치에 앉아 공허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일할 곳이 있을까? 왜 이렇게 나는 회사원이 되기 힘든 걸까? 하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곧 삼한사온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바깥 기온은 낮았고 감상에 잠기는 것도 잠시, 추워서 후다닥 집으로 들어왔다. 앞으로 취준을 하다가 결국 직장인이 되지 못할지언정 세상엔 먹고 살 길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다시 다른 걸 시작하면 되는 거지'라고 이렇게 가볍게 마음을 먹고 나자 무거웠던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답답한 형국’이라는 내가 언제는 안 괴로운 인생이었나? 다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그저 덤덤하게 다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로 말씀은 참고만 하고 난 또 이력서를 낼 것이다. 때론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는 것도 괜찮다. 정말 맞는지 틀린지 한번 보자고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