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맛 바로 이거지
벌써 입사한지 한 달이 되었다. 일하면 오늘 하루는 안 가지만 일주일, 한 달은 빨리 간다는 직장인들의 말에 어느덧 공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평일에 출근하면서 매일 딱 하루만 보고 살자며 마음을 먹어왔다. 옛날에 회사 생활 할 때는 언제 1년을 채우나 하는 답답한 심정으로 다니다가 지치는 걸 반복했는데 몇 년간 열심히 도닦고 드디어 달라졌다. 그날엔 그날만 산다는 생각으로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 회사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괜찮은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것도 이번 기회엔 내가 운이 좋다면 좋은 거겠다.
기다리던 첫 월급은 월급날이 되기도 전에 일찍 입금되었다. 연휴가 낀 덕분이었는데 월급이 찍혔을 때 얼마나 설레고 좋은 순간이었는지. 백만원대로 그렇게 많지는 않은 월급이지만 그동안 백수생활에서 한 달에 벌었던 돈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백수생활로는 약 반년을 버틸 수 있는 용돈이 쏙 들어오니 마음이 푹 놓였다. 요양하고 쉴 때는 쇼핑을 하더라도 불편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그리고 이제 한 달에 최소 백만원씩 저축하고 매달 소비를 잘 관리하자는 희망찬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제대로 지켜질지는 모르지만 일단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어려웠던 시기를 자주 떠올리며 헝그리 정신을 잊지 않기로 한다.
첫 월급이 들어오고 한 일은 바로 쉬는 날 대낮에 혼자 카페를 가는 것이었다. 카페는 늘 친구랑 대화하기 위해 가는 곳이었는데 오직 먹을 목적으로 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조각 케이크와 아아를 주문해서 창문 너머 행인들을 구경하면서 혼자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냈다. 별거 아닌데 내가 바깥에서 사회생활해서 번 돈으로 사 먹으니 꿀맛이었다. 거기서 끝나면 아쉽다. 카페에 앉아 올영 앱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몇 가지 주문했다. 이렇게 죄책감 없는 쇼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짜릿한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돈을 쓰니 사회생활이 이렇게 정신건강에 이로운 것이었나 하는 생각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었다. 입사 후 한 달 만에 체력도 좋아지고 바빠서 잡생각도 줄어들고 돈도 들어오니 일석삼조 아닌가.
물론 간만의 사회생활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조금 예민하고 아픈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월경 전, 며칠간은 불편한 시기를 버텨야 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잘 안 들리게 조용히 얘기하거나 웃는 소리가 들릴 때 나도 모르게 내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때가 있었다. 생각이 스칠 때마다 금방 무시하고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내 얘기 아니야. 그리고 하면 어때. 나도 다른 사람 얘기할 때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이 짧게 스쳐 지나가면서 나만의 착각에서 빠져나와 사회생활을 소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혹시 몰라서 병원에 들렀을 때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일시적이라서 괜찮다고 하셔서 마음이 놓였다. 그 외에는 평소 감정이 요동치는 일 없이 대부분 차분하게 살았으니 ‘이 정도면 괜찮다, 난 건강하다’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달의 사회생활을 통해 여러 면에서 내가 회복되었음을 깨달았고 자신감도 얻었다. 무식하게 없는 힘을 짜내며 일했던 예전에 비해 이젠 아무 생각 없이 무던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만으로 무한 감사한 기분을 느낀다. 직업을 갖고 바삐 살면 심신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고 어느새 내 안에 멈춰있던 시곗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완벽하고 정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젠 평범이나 정상 같은 애매한 기준을 좇는 걸 그만두었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만든 알껍질을 깨고 자유로워진 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약골인간이지만 조용하게 또 은근슬쩍 장기근속을 향한 야망과 함께, 그럭저럭 건강한 삶을 꿈꿔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