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고는 있는데요
전직 장기백수가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생각보다 오래 버티고 있다. 과거 경험에서 만들어졌던 회사를 못 다닐 것 같다고 판단한 잘못된 징크스는 깨졌다. 나는 나름대로 회사에 적응해서 사람들과도 그럭저럭 어울리고 일도 어느 정도 하는 직원이 되었다. 가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날도 있지만 다음 날 또 출근 지문 찍는 걸 보면 정상 범주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어쩐 일인지 요 근래 감정 기복도 많이 사라지고 사고가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걸 보니 괜찮게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매일의 기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늘 똑같은 직장인의 일상에다 음식에 소금 치듯 약간의 불행감 한 꼬집을 뿌린 듯한 하루하루다. 사회생활만 하면 모든 답답함이 해소될 줄 알았던 착각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깨져갔다. 돈을 벌고 모으고 써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박봉 월급을 인내로 쪼개 모아 천만원을 예금했는데도 그 성취감도 잠시, 결국 무감각해진다. 역시 난 환자가 맞는가 보다. 아니면 월급이 너무 적어서 호르몬이 안 나오거나.
주변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 사랑할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현재 내게 필요한 건 좀 더 나은 삶과 직업을 가지고 살 기회다. 앞으로의 생존과 삶의 질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수 있는지가 걸려있는 문제와 마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회사가 편하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다. 딱 반 년 일할 때쯤에 든 생각이 여기에 다니기엔 내가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욕심이 고개를 들었고 이젠 나도 그 욕심을 담을 그릇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반드시 내년엔 이직 혹은 재취업이다.
계속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 전부터 사무직 재취업을 위한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저번달에는 JPT(일본어 능력시험)를 9년 만에 다시 보고 점수를 취득했다. 990점 만점에 860점. 도서관에서 빌린 책과 유튜브로 일본인 브이로그를 보고 듣는 매우 알뜰한(?) 방법으로 공부했다. 이제야 뇌세포가 살아나는지 신경증이 심했던 20대 학생 시절보다도 더 잘 받은 것 같아서 슬프면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제야 겨우 한 걸음. 앞으로 내가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역할에 맞는 일을 해내기 위한 여정이 쉽거나 짧지 않을 것 같지만 이번 시기를 놓치면 두 번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늦은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올해 사회생활 적응 테스트는 무사히 통과했다. 그렇다면 내년의 새로운 출발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