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드디어 1년
장기백수가 재취업한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오늘 하루만 버티자, 돈 나올 구멍이 이거밖에 없다 하면서 겨우 다니다 시간이 이렇게 흐른 것이 꿈만 같다. 요즘 확실히 느낀 점은 그동안의 걱정보다도 난 더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자신감이 붙고 저축액도 모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 그동안에도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하기 위해 자소서를 내고 면접도 보았다. 물론 떨어지긴 했어도 기대가 별로 없어서인지 실망은 크진 않았다. 그렇게 작은 도전과 함께 매일 덤덤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새 회사 생활이 따분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내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나는 무척이나 예민하고 신경증적이어서 회사와 인간관계를 숨 막히고 긴장되는 것으로 인식했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항상 내려놓는 마음으로 될 대로 되든지 해라, 번 돈 모아놔서 지금 나가도 아쉬울 거 없다는 마인드로 사는 게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 보고 신경 쓰는 심리도 사라졌다.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건데요?
그것만이 아니다. 일을 하는 태도도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20대의 나는 쓸데없이 지독한 완벽주의 성향을 가져서 누가 딱히 뭐라 안 해도 자신을 끝없이 몰아세우고 괴롭히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더 빡세게 한다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자, 누가 한 마디 한다 해도 자책보다는 ‘응 미리 안 알려준 네 잘못이야’,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말로만 죄송하다고 하면서 싹 다 낭창하게 넘겨버린다.
정말로, 이렇게 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은 모양새다. 완벽함을 추구했던 과거의 나와 비교하자면 상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살고 있음은 당연하다. 그래야 회사를 오래 다닐 수도 있는 것이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니 인간관계도 훨씬 매끄러워진다.
그렇게 최소한의 사람 노릇을 하게 되면서부터 당당한 마음이 피어나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물론 회사가 딱히 좋은 곳은 아니어도 아쉬운 사람이 맞춰야 하는 상황인지라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다니고 있긴 하다만, 남의 돈 가져오는 게 쉬운 일이 어딨겠나 한다. 힘들 때는 그냥 속으로 돈을 벌면 당연히 힘들어야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용하면 다 된다는 걸 알았다.
우리 세대는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말도 있으니 앞으로 돈 벌 세월이 많으니까 에너지를 아껴가면서 항상 절전모드로 살아가면 되는 것 같다. 매일 내가 가진 에너지의 80%만 사용하기. 번아웃 될 때까지 정신력과 체력 소진하지 않기. 필요할 땐 감정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내고 시원하게 말하기. 이런 것들을 배워가는 단계에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은 주변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로부터 표정과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기나긴 어둠의 터널의 끄트머리까지는 나온 것일까.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내 삶에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좋은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