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얘기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우리집은 어려워서 아버지 회사에서 빌려준 쥐가 나오는 사택에서 살았다. 화장실 천장 구멍에서 핑크색의 쥐새끼가 떨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세네 살의 생애 최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부모님은 성실하고 집안 경제 관리에 철저하셨고 어찌어찌 운까지 따른 듯하다. 부모님의 생활방식을 성인이 된 내 눈으로 다시 보니 경제관념과 알뜰함을 새로 배울 수 있었다. 생활수준을 함부로 올리지 않고 가진 물건을 소중히 오래 쓰고 검소하게 사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특히 낙동강 물은 말라도 통장은 안 마른다고 대단히 과장된 우스갯소리를 하셨던(그만큼 철저히 계획적으로 관리하신다는 뜻) 아버지는 자가용도 중고차를 사서 소중하게 다루셨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작은 부자는 손 끝에서 나온다는 문장을 읽었던 걸 떠올리게 된다.
덕분에 나도 주제파악을 하고 소박하게 지내면서 주변 친구들의 사치, 잦은 외식과 술자리, 해외여행 등의 욜로 생활을 보고도 크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있는 건 잘 지킨 것이다. 그리고 10년을 부부 둘이서 일하고 사정상 1억을 채 모으지 못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선 확신했다. 소시민, 월급쟁이는 선저축 후지출과 절약, 검소를 몸에서 떼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많이 못 벌어도 가진 거라도 잘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부자는 못 되어도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조용히 살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아프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도박성 투자를 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해야 하지만. 사기꾼이 많으니 남의 말은 의심하면서 듣고 절대 큰돈을 빌려주거나 맡기지 않는 게 철칙이다.
나는 친해도 금전 거래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내가 봐도 관상부터 돈을 안 빌려주게 생겼다(ㅋㅋ)
정면에서 콧구멍이 잘 안 보이는 나는 학생 때부터 돈 빌려달라는 얘기를 덜 들은 편이다. 친구가 은행이자보다 더 줄테니 큰돈 빌려달라고 농담반진담반 할 때는 남의 돈은 아주 무서운 것이며 돈은 은행에서 빌리라고 냉정하게 말해줬다.
돈은 내 손을 떠나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덧붙여 돈과 친구 중에 나는 무조건 돈을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미리 주변에다 못도 박아두었다.(돈 실컷 써놓고 손 벌리지 말라는 뜻) 사람한테 정이 별로 없는 나는 언제나 내 생존이 우선이다.
나이 먹기 전에, 재산이 모이기 전에 사람한테 좀 속아보고 이용도 당해보고 데여보는 것이 추후 자신과 재산을 지키는 튼튼한 방어막이 된다고 생각한다. 진흙탕에 빠져도 바닥을 헤저으면 뭐라도 잡아 올릴 게 있다는 앎은 내 자아와 통장의 벽을 두텁게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