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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라도 당해야 일하러 나갈 거야?

장기목표가 없는 백수 어게인

by 유주씨

*한심함 주의*


다른 일 할 거라며 전회사를 당차게 뛰쳐나왔던 작년의 나와 좀만 더 쉬었다 가자는 올해의 나의 모습은 대조된다. 또 흐지부지 되어버린 1억 모으기 플랜은 머릿속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사기라도 당해서 빈털터리 돼야 나갈 거야?”

날 생각해 주는 친한 언니의 일침에도 끄떡없었다.

“보이스피싱이라도 당해야 나갈지도 몰라요.”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불행으로 눈앞의 방패를 강제로 치워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수동적인가.


40대에 개인 사업장을 운영하는 게 목표라는 N잡러 직장인 언니는 내게 장기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너 그렇게 회사 다니는 게 싫으면 알바라도 하면서 개인사업 준비해.”

반복된 일상에서 이력서 100곳도 안 내보고 손 놓아버린 자신이 부끄럽다. 돈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봤자 N천만원.



또 반년이 넘어가는 백수 어게인에게 그동안 바뀐 건 거처 하나로, 부모님이 계신 본가1에서 도망쳐서 부모님이 없는 본가2로 넘어와서 지내고 있을 뿐이다. 본가2에 살고 있던 오빠는 나를 자극할 생각이었는지 본인이 지난 1년간 4천만원을 더 저축했다며 도발(?)을 걸어왔다. 고맙지만 흐리멍텅한 백수 어게인은 독한 그를 이겨먹으려는 생각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조금만 더 놀자 하다 보면 끝이 없는 건 알지만, 사실 정말로 놀고 싶다기보다는 이젠 주저하고 있는 거다. “어머니, ㅇㅇ이의 돈을 전부 뺏으세요”라며 농담하는 친한 언니의 말대로 겨우 N천만원에 미래를 맡기는 거라면 시야가 좁은 거겠고, 여기에 만족해도 너무 세상 물정 모를 만큼 발전가능성이 없는 거겠지.



“차라리 돈 다 쓰고 다시 일하러 나가”라는 오빠의 달콤한 말에 발끈하다가도 수긍하는 게 쉬운 길이라는 걸 느끼고 만다. 여기서 200만원만 더 쓰고 새로 준비하자는 계획은 기똥차게 잘 세워버린다. 하지만 장기백수는 이제 장기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걸 안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건 주변의 한 마디가 아니라 결국 내가 지금부터 할 결정이다. 일단 노트북을 열었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초점 없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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