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끝없는 가치 증명의 요구라고 말할 것 같다. 세상에 나와서 배운 건 사랑은 조건적이고 쉽게 줄 수 없는 거란 것이었다.
그 사랑의 값어치란 게 얼마나 높길래 사랑을 받으려면 내가 얼마나 가치 높고 얌전하고 어른스러운지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걸까.
언젠가 쉬고 있을 때 부모님이 우리집은 이제 희망이 없다고 하셨고 그때부터 태어난 걸 부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열심히는 했었다. 그다지 잘하지 못했고 운조차 따르지 않았던 거였다. 그냥 공부 머리도 세상 사는 머리도 건강도 좋지 않은 걸 어떻게 하나. 나는 모지리라 이것밖에 안 되는데.
지나간 옛 연인을 떠올려보면 똑같이 내게 끝없는 가치 증명들을 요구했던 게 생각난다.
“넌 살을 더 빼야 해.”
“넌 뚱뚱해진 나에게도 변함없는 사랑을 줘야 해.”
“넌 꼭 성공해야 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 그렇지 않은 삶은 의미가 없어.”
군살 없이 마른 몸매, 뚱뚱함도 사랑할 좋은 성격, 성공할 수밖에 없는 머리와 수완을 다 가지면 나는 너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너나 완벽하게 살고 그렇게 요구할 거면 다른 사람이나 알아보라고 큰소리를 치지 못한 게 아쉽다. 그깟 남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왜 그렇게 에너지를 낭비한 걸까.
이제는 뭔가를 요구받는 긴장감이 숨막혀서 사랑받기를 그만두었다. 가치증명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더 가치 있길 요구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사랑해 준다는 이유로 날 함부로 재단할 권리가 주어질 일 또한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