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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난을 아는 척하는 것에 대해

90년대생이 진짜 가난을 알리가요?

by 유주씨

저는 욕심이 없는 걸까요, 철이 없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둘 다야, 넌 너무 부유해라는 말을 들었다. 굶을 일이 없는, 오히려 적게 먹기를 권장하는 세상에서 집의 냉장고는 음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철딱서니 없는 딸내미는 진짜 가난이 뭔지 모른다. 90년대 초반에 태어나 대체로 성장하는 경제상황 속에서 살았으니까. 쥐, 바퀴벌레, 개미가 나오는 집에서 살았다고 하면, 판자촌은 아니잖아? 살만 했네 한다. 그렇다. 나는 진짜 가난을 모른다.



가난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어서 함부로 말할 수없지만 확실히,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내가 생각해도 가난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건지 넌 욕심이 별로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남들은 뭘 그렇게 다 가지려 하고, 사람이 원하다고 다 가질 수나 있나 하는 심드렁한 자세는 무기력과 연관될지도 모른다.



의욕 없는 인생은 처음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원래는 샘도 많고 지는 걸 싫어하는 내가 개인적인 좌절이 반복되면서 결국 현실에 안주하고 무기력감이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걸 푸는 건 나의 숙제다.



좀 더 욕심내서 의욕적으로 일하면 인생은 달라질 수 있어라는 말에 여전히 심드렁해진다. 새치 한 가닥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 마음이 나이를 먹어 변화가 두려운 거다. 뭘 자꾸 바꾸라 그래, 뭘 자꾸 성장하래. 세상의 소리들은 왜 이리 사람을 못 살게 굴까.



난 진짜 가난을 모른다. 그렇기에 나를 계속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수명이 길어진 인생 속에서 뭘 그렇게 매일 중간고사 치듯이 나를 정신적으로 내몰아야 하는지, 그 소리들이 반갑지가 않은 것이다.



배가 불렀다면 그건 내 복인 거다. 누군가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을 들먹이며 너는 왜 그렇게(편하게) 사냐고 했을 땐 어이가 없었다. 가난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라, 또한 날카로운 잣대를 들고 주장한다면 그 가난도 진짜 가난은 아닐 수 있다.



전후 시대가 아닌, 경제성장기에도 집이 망해가서 본인이 돈 벌어모아 갖다 드렸다면 그건 본인 사정이다. 사지멀쩡한 부모가 알아서 처리하실 걸 왜 스스로 싹 다 갖다 드리고 지금도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지. 그걸로 왜 생판 남인 내가 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려고 가스라이팅 하는지.



그의 지난 주관적인 가난이 우습다는 게 아니라, 그 가난을 내게 들먹이면서 본인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보여서 우스운 거다. 내게 진짜 가난에 대해 들먹일 거면 그 가난에서 벗어나서 잘 살게 된 성공담까지 들고 오길 바란다. 그래야 잠깐이라도 내 관심을 끌 수 있을 테니까. 나도, 세상도 당신의 가난에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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