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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r 09. 2024

누가 갱년기에 살이 찐다 하였는가?

먹고 싶은 마음이 왜 없는 건지.

 엄마의 갱년기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왔던 걸로 기억한다. 나처럼 추위를 많이 타던 엄마는 갱년기를 지나며 체질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어도 춥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나도 엄마처럼 추위를 많이 탔고 어깨는 여름에도 한기가 나올 정도이다. 출산 후 산후풍으로 출산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지만 지금도 반바지를 입지 못한다. 무릎이 너무 시려서 한여름에도 배는 덮지 않아도 무릎은 꼭 덮고 잘 정도로 나의 무릎은 춥다. 이런 내가 작년 겨울이 시작된 11월부터 추위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갱년기 증상도 없었기에 날씨 탓만 했었다. 엄마의 갱년기를 4~5년 겪으면서 나는 갱년기가 오면 격리를 해 나와 나의 가족들을 보호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때는 20대의 젊은 나이였는데도 엄마의 갱년기는 강렬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연배의 직원들이 먼저 갱년기를 시작했다. 보고 들은 게 많으니 걱정도 두서너 배는 더 되었지만 스스로에게 마법주문같이 속으로 말을 했었다. 누구나 다 겪는 거니 호들갑 떨지 말고 부드럽게 넘기자 했다. 누구는 살이 너무 쪄서 맞는 옷이 없고 땀이 시도 때도 없이 나서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잠 못 자는 건 평생 내 등에 업고 있는 보이지 않는 동반자라 참겠지만 애써 빼놓은 살이 다시 찌는 건 참을 수 없다 생각하고 식단과 운동에 신경을 더 써야 했지만 감기를 몇 달을 하고 나니 기운이 없고 온도차가 심하게 나는 이번주의 경우 콧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냉장고 털이를 몇 달째하고 필요한 것들은 집 앞 마트에서 소소하게 해결하다 보니 파, 마늘, 설탕 같은 기본적인 양념도 소진되어 지난주부터 생필품 같은 식재료를 사재기 시작했다. 내가 겨울이면 애정하는 시래기도 2kg나 주문했다. 마른 시래기라 불리고 삶고 또 껍질까지 까야했지만 먹고 싶은 욕망은 그것들을 다 이기고 있었다. 나는 육고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 맛있다는 소고기도 한, 두 점을 먹으면 입에서 기름이 돌고 냄새가 난다. 아무리 더 먹으려 해도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시골에서 풀만 먹고살아서 그런 것이라 둘러대지만 어린 시절 먹어보지 못한 식재료라서 더 그런 것 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의 집밥 반찬은 기본이 풀이다. 요즘같이 풀값도 비싸고 무엇하나 비싸지 않은 것이 없긴 하지만 메인 고기요리하나에 베이스로 반찬 몇 가지가 있으면 퇴근 후에도 후다닥 저녁밥상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고기가 없으면 밥 먹기를 힘들어한다. 당연할 것이다. 재수를 하는 첫째와 고3인 둘째는 고기만 좋아한다. 지금은 그래도 건강을 나름 생각하고 엄마의 수고로움을 아는 것인지 한 젓가락씩 나눔 접시에 집어두면 말없이 먹어주어 고맙다. 이런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나도 입맛이 돌 것도 같은데 퇴근해 집에 가면 식욕이 사라지고 저녁밥은 굶게 된다. 이번주만 해도 저녁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기력이 너무 없을 것 같아 썰어 놓은 당근과 고구마를 조금 먹고 과일도 한쪽 먹으려 노력한다. 요구르트나 그릭요거트도 만들어서 먹기도 한다. 식욕은 어디로 간 것인가? 갱년기 뒤에 숨어버린 것 같다. 이러다 어디선가 튀어나와 폭발을 할지도 몰라 조금씩 조금씩 먹어두려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이 가끔은 처량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40대였을 때는 원 없이 먹었고 또 원 없이 살이 쪘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갱년기라고 이름 붙여진 이런 상황이 싫어서인지 10kg이나 감량한 나의 무의식이 음식을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독서실에 갔던 아들이 약속된 저녁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오는 바람에 마음이 더 급해졌다. 군말 없이 기다려준 아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일찍 집에 온다고 나의 퇴근시간은 바뀌지 않으니 1일 1 식 하며 배고픈 걸 참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다.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자식인지라 남편과는 온도차가 갈수록 커진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게 맞는 말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머릿속으로 어떻게 먹을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데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고 결국 나는 아들 밥수발만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2kg의 상추는 작은 아들과 잘 먹고 있고 매일같이 누룽지도 만들어 아이들의 간식이 된다. 단백질 보충원으로 병아리콩으로 만든 수프 같은 죽을 만들었는데 저건 살려고 먹는 정말 비상식인데 저것조차도 입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릭요거트도 만들어 샐러드와 함께 먹는다. 그리고 애정하는 당근은 10kg 사서 김치냉장고에 저장해 놓다. 동생의 말처럼 구황작물에 미친 사람처럼 감자, 고구마도 주식이다.

  

양배추볶음/무나물


병아리콩스프/당근 고구마


상추/사과 바나나


그릭요거트/누룽지

비빔밥이나 비빔국수에 두루두루 잘 먹히는 반찬들이다. 이 정도만 있어도 살찌지 않고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들과 나를 위해 나름 신경을 쓴 반찬들이다. 이렇게 반찬을 해 놓으면 한두 번은 밥을 먹겠지 했지만 여전히 식욕은 없다.




시래기 2kg가 생각보다 많다. 퇴근 후 택배를 받아 불리고 압력솥에 삶아 12시가 넘어 껍질을 깠다. 국을 끓이고 볶아먹고 밥에도 넣어 먹으면 맛있다. 갔던 입맛이 돌아왔으면 한다. 나는 왜 입맛이 없을까? 살은 왜 자꾸 빠지고 그러는지 무섭다. 45kg을 유지했지만 44kg으로 넘어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찌는 게 두려워 체중계를 멀리 했다면 지금은 살 빠지는 게 무서워 체중계에 올라가기가 무섭다. 자랑 같은 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진심으로 무섭다. 오늘 저녁은 이 시래기나물에 승부를 걸어 본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50살 먹고 얻은 행복의 정답이다. 이 사소하고 1차적인 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된다. 제발 오늘은 좀 먹고 싶어 먹었으면 좋겠다. 억지로 몇 숟갈 뜨면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고 지친다. 식욕이 좀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번주는 김밥도 한 번도 말지 않았다. 김밥에 미친 내가 말이다.






누가 갱년기에 살찐다고 했던가? 남이 한 밥이 정답인가? 운동을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적는 지금 내 머릿속에는 내일은 내일의 반찬이 있을 테니 기다려 보자는 생각이 스친다. 시래기도 볶고 시래깃국도 끓이고 김밥도 싸볼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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