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라 동정은 금물
약속이 있는 날이면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길을 찾는다. 로드뷰로 약속장소의 위치를 파악하고 주위 풍경을 관찰한다. 지도를 캡처하고 모퉁이를 표시하고 건물에 있는 가게 이름들을 적는다. 이런 수고는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나는 타고난 길치이다. 나를 포함한 형제들 모두 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길치 DNA를 가지고 있다.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끝없이 펼쳐지는 길치만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창의성과 한계를 알지 못한다. 길치인 나에게 초행길은 그야말로 인생의 새 역사를 쓰는 고행의 길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주소만 안다면 로드뷰로 미리 갈 곳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로드뷰를 인지하는 것 자체가 바로 고행의 시작점이다. 절대 길치의 힘듦을 쉽게 가늠해서는 안 된다. 공간 지각 능력이 한 번에 무너지면 눈앞에 보이는 지형지물을 로드뷰와 매치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 동안 출퇴근하며 다니던 지하철 출구를 나오는 순간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 현재 위치를 인지하지 못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당황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한 번의 물음으로 해결이 된다면 좋겠지만 두, 세 번을 더 물어봐야 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나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그렇게 확인의 확인을 한 후에야 발을 뗀다. 간혹 내가 사는 아파트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내 머릿속 방향과는 달라 당황할 때도 있다.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어 아파트 출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때서야 내 머릿속의 지형지물들이 현실과 일치하는 묘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가본 적 없는 장소에서 약속이 생기면 약속장소까지 예상 소요 시간과 길을 못 찾고 헤맬 시간까지 계산해서 집을 나서야 한다. 이런 길치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약속 시간에 좀 늦는 걸 기분 나빠하고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오가는 노선이 달라지기도 하는 버스 대신에 변하지 않는 노선과 비교적 정확한 도착시간으로 안도감을 주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러나 믿음직스러운 지하철도 가끔 내 머릿속에서 반대 방향으로 인식될 때가 있다. 그래서 간혹 목적지 반대 방향으로 타거나 환승역이 낯설게 느껴져 지나치고 출구를 찾지 못해 길을 잃어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자책과 자괴감은 들지만, 마음을 비우고 ‘괜찮다. 그럴 수 있다.’ 생각하고 나를 다독인다.
동생과 함께 움직이게 되는 날이면 운전을 못 하는 내가 늘 조수석에 앉는다. 조수석에 앉는다고 해서 편하게 잠을 자거나 풍경을 보며 즐길 수가 없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애매한 시간 속을 달려야 하는 두 길치의 만남은 봄바람에 녹아가는 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늘 조마조마하다.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도 운전하는 사람도 조수석에서 안전띠를 부여잡고 있는 사람도 모두 같은 마음이다. 운전대를 잡고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이든 대낮이든 중요하지 않다. 도착지까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자매의 목적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날 밤 12시만 넘기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다. 간혹 길을 잘 찾아가고 있더라도 내비게이션이 도와주지 않을 때도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지내시는 엄마가 갑자기 시골 종합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나와 동생은 본가에 들러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한 채 지름길이라고 알려주는 시골길을 달렸다. 마음은 급한데 ‘경로 이탈’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길도 없는 논으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을 끌 수밖에 없었다. 가던 길을 되돌아간 탓에 예상 시간보다 훨씬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그날 엄마는 아픈 몸으로 우리의 속사정은 모른 채 늦게 왔다고 화를 냈다. 병원에서 짧은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갈 시간이 되자 뒤통수는 쳤지만 믿고 의지할 것은 내비게이션뿐이라 화를 가라앉히고 내비게이션을 다시 켤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길치라고 고백하면 길 찾기 앱을 보고도 길을 못 찾는 사람은 없다며 장난이나 허풍을 떤다고 생각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간혹 이런 나를 비웃거나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 된 베테랑 길치로 나 자신과 최선을 다해 싸우는 중이라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이 뭐라건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내 말을 믿어도 믿지 않아도 내가 길치인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치 앞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신념대로 앞으로 나갈 뿐이다. 틀어진 방향에 있는 지형지물을 하나하나 레고를 조립하듯 내 머릿속에 재배치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이 고난이지만 꼭 해야 한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어쩌면 인생은 길치가 방향을 찾고 없는 공간지각능력의 조각을 알뜰살뜰 주워 담는 행위일 수도 있다. 가끔은 길을 헤매고 목적지를 찾는 과정에서 작은 즐거움을 만날 때도 있다. 보도블록에 피어난 잡초를 대견한 눈으로 보거나 아이의 천진한 웃음소리를 듣기도 한다. 늙은 노부부의 정다운 뒷모습을 부럽게 쳐다볼 때도 있다. 길치라고 못 갈 길은 없다. 다만 좀 헤맬 뿐이다. 길치이지만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편이다. 이처럼 단점에 노력을 조금만 더하면 어느 순간 장점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일은 조카들과 함께 베테랑 길치 자매의 1박 2일 여정이 시작된다. 시골의 아버지 봉안당에 들러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엄마가 계시는 본가에 갈 것이다. 봄바람을 맞으며 길치의 즐거움을 한껏 맛보고 올 예정이다. 내일 아침부터 조수석에 앉아 내비게이션과 눈치 게임을 할 생각에 오늘 밤은 오랜만에 진지하게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