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감자의 교훈
회사에서 작년부터 미뤘던 회식이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다. 소고기로 유명한 식당을 예약했다. 이 식당은 소고기만 판다. 어릴 때야 고기 먹을 욕심에 회식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고기 먹기 위한 회식이라기보다는 침목도모와 술을 먹을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로서의 작은 일탈의 기회일 뿐이다. 아이들의 저녁밥도 걱정되었지만 하루쯤은 굶어도 상관이 없고 또 절대 굶지 않으니 걱정은 넣어두고 차분히 앉아 구워주는 고기를 먹을 뿐이었다. 목까지 차오르는 고기를 어찌어찌 삼키고 맥주도 몇 잔 마시고 집으로 왔다. 구워주는 고기를 씹으면서도 이렇게 먹다가는 내일 분명 헬스장에서 기어 다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이 되자 늘어난 몸무게로 헬스장을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식 한 번에 2kg이 찌다니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단백질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오후 2시쯤에 도착한 헬스장에서 5시가 넘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러닝머신 위에서 1시간 20분 동안 내려올 수가 없었다. 근력유산소와 덤벨, 스트레칭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걷는지 기는지도 모르게 겨우 집으로 돌아와 체중계에 오르니 겨우 300g이 빠졌다. 이건 빠진 것도 아니고 안 빠진 것도 아닌데 숙제를 한 기분은 들어서 다행스러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 숙제는 오늘 다 해야 하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난번 시골에서 캔 알감자를 씻었다.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는 밥보다는 구황작물을 더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면 구황작물부터 손질하게 된다. 껍질째 먹으면 몸에 더 좋다니 음식물쓰레기도 줄일 겸 깨끗하게 씻어 반으로 갈라 소금을 넣고 삶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웨지감자는 많이 만들어 먹었었다. 알감자는 너무 작아 껍질을 벗기는 것도 여간 힘이 든다. 완전히 익지 않은 채 건져내 물을 따르고 오일과 소금을 뿌려 간을 하고 식힌 다음 냉동해 놨다가 에어후라이기에 조금씩 돌리면 아이들도 잘 먹어준다. 시골에서 직접 캔 감자라 포슬포슬해 입에 넣으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사라진다. 다른 일을 하다 너무 익혀서 좀 지저분해지긴 했지만 먹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많이 먹으면 살이 된다. 적당이 가 좋지만 그 적당한 선은 누가 정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허기지니 입안에 몇 개 주워 넣어 본다. 천일염 이외엔 특별한 것을 넣지도 않았는데도 '세상에 이런 맛은 없는 맛'이다. 알감자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큰 감자 한 박스가 남았지만 아쉽다. 알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 쓰임이 다르기에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쉬움일 것이다. 다 내가 먹어 없앴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흙속에서 나와 물에 씻기고 칼로 반토막 나 소금물에 삶아져 기름범벅이 되어 다시 뜨거운 불속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끝이 나는 감자.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쉬운 사람이었던가? 감자 한 알에도 이런 가르침이 있다니.
회식에 터진입이 감자로 입막음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속으로 삭이며 아이들을 줄 김밥을 싼다. 엄마는 소고기 먹고 살쪄서 운동한다고 구황작물을 삶고 수능 볼 아이들에게 김밥이나 싸주다니 누가 봐도 이상하긴 하지만 이게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멍든 팔뚝과 전신통증을 견딘 김밥을 부디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