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뚱이뿐.
퇴근하기 집안일을 대충 정리하고 요가매트와 얼음물, 이어폰을 챙겨 아파트 커뮤니티에 있는 헬스장으로 갔다. 피곤에 쩐 월요일이지만 몸이 무거워 운동을 빠질 수가 없었다. 직장인에게 월요일은 정말 힘든 날이다. 특히 몇 주 동안 일요일 일정이 있어 외출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어 주말이라고 해도 휴식시간이 없었다. 일요일부터 월요일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요가복을 입은 탓에 엘리베이터에서 입주민들을 만나면 아무리 운동가는 길이라도 부끄럽다. 50살 먹은 아줌마가 울퉁 불퉁한 몸이 드러난 요가복을 입고 타인의 시선을 모른 척 넘기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요가복이라도 입지 않으면 그냥 소파에 퍼질러져 과자를 먹으며 TV리모컨이나 잡고 있을 것 같아 옷이라도 입어 마음을 다 잡는다. 부끄럽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헬스장으로 가는 내가 대단하기도 하고 나이를 핑계로 얼굴이 두꺼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방패 삼아 헬스장에 도착했지만 불 꺼진 헬스장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정기 휴무일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어쩔 수 없이 안방에 요가매트를 깔고 근력유산소 운동을 마쳤다. 몇 주 동안 저녁시간에 밥을 먹은 탓에 몸무게가 불어나 퇴근 후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3시간 넘게 운동을 했다. 저녁을 굶고 싶지만 1시간의 러닝과 고강도 근력운동에 손이 떨려서 도저히 안 먹을 수가 없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운동과 식사의 고리는 계속되었고 어차피 더 뛰면 된다는 생각에 슬금슬금 몸무게가 불어났다. 오랜만에 47kg까지 늘어난 몸무게가 무서워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어플에 가입해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살이 빠지면 근육이 빠지고 살이 찌면 체지방이 쪄서 문제다. 다만 조심하자는 의미이고 내가 정한 체중이 있으니 운동을 할 뿐이다. 체중에만 신경을 썼더라면 나는 지금 43kg 정도의 무게를 가진 말라깽이 아줌마여야 한다.
몇 달 전 위내시경을 했을 때 말라비틀어진 사막 같은 위장이 안타까웠다. 작년과 몸무게는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 노력하고 정제된 탄수화물은 피했다. 그러나 최근 약간 마음가짐이 느슨해진 것인지 시골에서 캐 온 감자를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스트레스와 배고픔으로 믹스커피와 빵, 과자 같은 정제탄수화물을 회사에서 많이 먹었다. 죄책감과 의무감으로 40분 정도 걷기와 인터벌 러닝으로 나의 저녁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약간의 휴식 후 덤벨과 근력유산소 운동을 2시간 정도 더 하고 나면 몸이 비틀거렸다. 인바디를 보면 체지방이 증가해 빠지지 않아 속상하다. 그래도 좌, 우 다리의 벨런스는 맞아 다행이다. 운동을 하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힘들 것을 안다. 나이를 먹어가고 기초대사량도 적어져 움직이기보다는 바닥에 붙는 편안함이 더 좋아지고 있다. 직장에서 종일 시달리고 집으로 가서도 맘 편히 쉬지 못하는 직장인 엄마라는 한계도 이런 나를 더 소파나 침대로 이끈다. 퇴근 후가 더 고비라 늘 책상에 앉아 무얼 하고 몸을 움직이려 노력하지만 이 노력이 신체적 움직임으로 이어지지 않고 생각 속의 움직임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내가 가끔은 한심하기도 하다. 기억을 왜곡시켜하지 않은 운동도 했다고 생각하고 늘어난 뱃살만 원망하면서 TV 리모컨을 쥐고 있던 과거의 내가 밉다. 어떻게 뺀 살인데 다시 찌울 수는 없다는 ‘독한 마음’을 다시 한번 먹어 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태해진 나의 마음가짐을 질책하기 위함이 아닌 계속하는 동안은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어떤 사람들은 퇴근 후 3시간씩 운동하는 나를 ‘독종’ 취급하기도 한다. 어쩌면 ‘독종’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뚱이 하나뿐이니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 할 뿐이다. 50살,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아프지 않고 건강히 살다가 적당한 때에 죽는 것이다. 그 과정 중 피붙이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고 또 나는 한차례 수술경험이 있어 조금 더 조심하고 있을 뿐이다. 매일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저녁 운동을 쉴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쉬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와 정한 약속을 지키려 운동을 하려 주섬 주섬 옷을 갈아입고 요가매트를 챙기고 할 것을 안다. 그런 사람이 나인 것이다.
매일 아침 체중계 숫자에 놀라 뒷걸음질 치고 8kg 덤벨의 벽을 넘지 못해 9kg 덤벨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고 줄지 않는 뱃살에 실망해도 늘 최선을 다 하는 내가 좋다. 그런 나를 더 좋아하려 애써본다. 오늘도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운동을 할지 또 망설일 나에게 ‘잘하고 있다’ 얇은 칭찬 한마디 건네어본다. 그리고 체중계의 늘어난 숫자에도 언젠가는 초연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