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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Sep 04. 2023

김밥에 미친 여자사람

다이어트라고 적고 폭식이라고 읽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김밥을 무의식적으로 싸기 시작했다.

물론 김밥이라는 것이 한 끼의 간단한 식사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심리적으로 행복감을 주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단무지를 썰고, 채소를 손질하고, 지단을 부치고, 당근을 볶고 지글거리는 부엌의 부산함이 좋다.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가량의 그 시간이 마치 소풍 전 설레는 마음같이 행복하다.





김밥하나에 이렇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흥이 차오르면 이건 저렴하게 행복을 사는 것이니 좋지 아니한가?


머릿속에 생각한 재료로 둘둘 말아 자른 단면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바쁘게 입에 넣어 씹는 순간 각각 다른 재료들이 입안에서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이래도 안 먹을 수 있겠니?





가끔은 재료가 없어 남은 반찬을 처리하는 용도로도 김밥만 한 게 없다.

정말 재료가 없는 날에는 김치볶음밥이라도 해서 김 위에 깔고 치즈를 넣어 김에 둘둘 말아준다.

거의 주말에는 꼭 김밥을 싸고, 주중에도 한두 번은 김밥을 만다.

특히 다이어트를 시작한 작년부터 더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백미대신 현미밥을 하고 가끔은 밥이 없이 김밥을 말기도 했다. 밥이 없으니 김밥이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김에 무엇을 말면 다 김밥이라고 부른다.


내가 싼 김밥이 맛이 없는 편은 아니나 아이들은 정말 싫어한다.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나물이나 잔멸치를 치즈에 숨겨 말거나 할당량이라고 몇 개씩 억지로 먹이기도 해서 그런지 싫다는 의사표현을 너무 적나라하게 할 때면 정성을 무시하는 것 같아 속상하지만 각자 취향은 존중해 주기로 한다.


김밥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 같은 개념으로 잘못 자리 잡은 덕에 가끔은 정량을 너머 욕심을 내서 먹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오며 가며 핑거푸드 개념으로 먹다 보면 항상 더 먹게 돼서 강제로 간헐적 단식을 하게도 만든다.



김밥은 초등학교 소풍 때나 먹을 수 있었던 별미 같은 음식인데 이제는 내가 학부형이 되어 마음만 먹으면 낮이고 밤이고 만들 수 있어서 무엇인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내 손을 거쳐 만들어져 나오는 통통한 김밥을 썰어 속재료가 다 보여서 좋다. 


인기드라마였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도 예상치 못한 맛에 느끼는 불안으로 속재료를 확인할 수 있는 김밥을 선호한다고 했듯 나도 마찬가지이다. 가식적인 게 싫고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싫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이런 김밥같이 솔직하고 진솔한 나도 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50년을 살아와도 입에서 거부하면 뱉어내야 한다. 목구멍이 좁아 삼키기가 너무 어렵다. 그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무엇이든 미치면 중간이상은 간다고 생각한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늘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부르기도 하니 나도 좀 더 미친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10kg을 감량하고 유지하게 해 준 1등 음식인 김밥에 미쳐보기로 했다. 아니 이미 나는 미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도 나는 현미밥으로 김밥을 말고 있을 것이다. 아들이 싫어하는 멸치볶음을 넣고, 불고기를 넣고 말아 정성이라고 한입만을 외칠지도 모른다. 이렇듯 나에게 김밥은 현실을 살아내고 미래를 당기는 힘이다.



김밥이 이렇게 무섭다. 

김밥에 미치니 이렇게 무서워진다.

오늘도 김밥에 미친 여자사람 아줌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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