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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Jan 01. 2024

2024년 여동생의 첫 보따리

동생이라고 쓰고 언니라고 부릅니다.

 나에게 2023년은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선사해 준 중요한 해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자격증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수가 남았지만 그건 당락의 문제는 아니니 상관없다. 내가 희망하던 자격증을 다 모았다. 모았다는 표현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자격증은 자격증일 뿐 나는 그 분야에서 일하지는 않으니 이력서에 적어도 4줄 쓸 자격증은 다 땄다. 그래서 나는 너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파서 제대로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꿈인가 싶어 계속 합격 확인을 몇 번이나 했다. 계획한 공부가 다 끝나고 이제 내 인생에서의 큰 공부는 끝났기에 2023년은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된 주 중요한 해이다.

 몇 년째 11월 이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려 고민한다. 단번에 적기도 하지만 고민해서 10가지 정도를 적는데 대단한 것들은 아니고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선들을 적는 편이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다소 공격적인 계획들로 내가 나를 힘들게 했었다. 그때는 건강도 좋지 못해 지하철에서도 쓰러지고 회사에서도 늘 수액을 달고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고 논문을 쓰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직장에서도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수술까지 하면서 정말 걸어 다닌 게 이상할 정도로 심신이 피폐했었다. 그래서 목표가 죄다 꼭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논문도, 졸업도, 자격증도. 모두 내가 해야 할 것들이었다. 나에게 적군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원을 해 주는 아군도 없었다. 집이나 직장이나 다들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쁜 사람들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나를 위해 살자 싶었다. 정말 이제는 막살아도 되는 때가 온 것 같았다. 일단 저지를고 보자 싶은 생각이 컸다. 사실 나는 절대 저지르고 보는 인간유형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계획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철저한 계획형 인간이다.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고 그 시간 안에 생각한 일을 해야 하는 좀 이상한(?) 유형의 사람인데 2023년은 좀 달랐던 것 같다. 다행스럽지만 또 겁도난다. 변한 내가 좋기도 하지만 또 대책이 없을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사실 결혼생활 22년 차, 다시 다니기 시작한 직장생활이 7년 차가 되고 나이 50이 되고 보니 무서운 것도 없다. 뭐 굳이 무서운 걸 찾는다면 자식과 내 통장잔고 정도라 할 수 있다.

 2023년은 무언가 나에게 다른 길을 보여준 해이기도 하다. 글쓰기를 재미 삼아 하기는 했지만 수업을 들으며 피드백을 받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에게 격려와 부러움의 눈빛을 보내주기도 했다. 어쩌면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과 가슴속 사그라든 열정의 작은 불씨를 찾게 해 주었다. 무엇이든 미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아직 글쓰기는 덜 미친것 같다. 그러니 2024년은 제대로 미쳐보려 한다. 취미로 하는 자격증 공부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나는 한 해 동안 글쓰기에 온정성을 쏟을 것이다.

 12월 28일은 아버지의 첫제사이고 12월 29일은 회식 감기몸살로 12월 30일 토요일은 하루종일 침대에서 누워만 있었다. 하루를 굶으니 체중이 1.5kg이 빠졌다. 12월 31일은 큰아들 찬스를 써서 재활용도 하고 빨래도 돌리고, 청소도 했다. 항생제 덕분인지 오늘은 한결 나아 아이들에게 밥도 해 주고 아침부터 일어나 집안일을 마무리했다. 아픈 몸을 끌고 아버지의 첫제사에도 다녀왔다. 동생은 첫제사라 오지 말라는 소리도 못하겠고 조심히 오란말만 했었다.



 오늘 오후에 여동생이 다녀갔다. 30여분을 달려 잠시 시간을 내 아파트 주차장에서 물건을 주고받고는 보냈다. 여동생은 내게 엄마나 언니 같은 존재이다. 엄마가 들으면 서운할 테지만 엄마 없인 살아도 여동생 없인 못 살 것 같다. 나이만 먹고 가끔 무뇌가 되는 오리지널 T인 내가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에는 나에게 직면을 시키고 챙기는 것은 동생의 몫이었다. 오늘도 동생이 건네준 종이백에는 배추 한 포기, 운동화 한 켤레, 바지한벌과 한라봉 3개, 다이소에서 샀다며 마사지 3 손이 가 있었다. 나에게 오느라 급하게 주섬주섬 짐을 쌌을 동생의 모습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다. 이런 챙김이 모여 내가 그래도 무탈하게 2023년을 살아낸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2024년도 잘 살아낼 것이다. 비록 감기몸살이 낫지 않아 항생제를 며칠 더 먹어야 하고 당장 내일 출근하면 결산서며 계획서며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건 금융치료(월급)로 완치가 가능하니 괜찮다. 혼자서 동생이 주고 간 한라봉 1개를 까먹고 나니 몸에 힘이 난다. 여동생에게 끝내 찾지 못해 주지 못한 철 수세미가 떠올라 잠시 화도 나지만 괜찮다.

 2023년 마지막까지 아파서 침대와 함께 했지만 2024년은 멀쩡하게 일어나 움직였다. 가는 2023년은 보지 못했지만 다가온 2024년은 보았으니 만족한다. 올해는 또 어떤 어드밴쳐가 기다리고 있을까? 내일은 시원한 배춧국이라도 끓여 뜨끈하게 한 그릇 하면서 느긋하게 2024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봐야겠다.


2024년 잘 부탁한다. 나는 나의 삶을 살 테니! 나의 삶을 살아 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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