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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Jan 12. 2024

직장인의 저녁

안 먹고 안되나 봐.

 아이들이 어릴 때는 뽀로로와 짱구 만화를 많이 봤다. 아이들이 어리니 어쩔 수 없이 TV채널은 만화뿐이었다. 사실 짱구는 성인용 만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소 선정적이고 내용도 있어 꺼려졌지만 아이들은 짱구에 열광했다. 경력단절 후 총 9년 차이고 현 직장에서 7년 차에 접어든 나는 지금 거의 짱구아빠의 퇴근 후 모습과 흡사하다. 물론 성별이 다르고 문화의 차이도 있다. 독박육아와 살림. 이것저것 못하는 거 빼고는 다 하는 게 우리나라 워킹맘의 실제다. 이러다 보니 남이 해 주는 밥은 특히나 고맙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점심이 하루 중 낙이 될 때가 많다. 식당메뉴를 보며 구내식당으로 갈지 컵라면을 먹을지 고민을 할 때도 있다. 오늘은 메뉴를 보지 않고 구내식당에 갔지만 나름 좋아하는 메뉴라 먹는 것에 욕심이 별로 없고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는 굶지 않는 느낌 정도로만 식사를 했다. 그런 내가 오늘은 욕심을 부렸다. 오징어를 잘게 썰어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한 콩나물국은 최근 먹은 식당 메뉴 중 최고였다. 



우리 회사 영양사선생님이 3명이다. 조리사 여사님들도 계시지만 음식을 만들어 내놓으면 230여 명의 시어머니가 입을 댄다. 그중 한 명이 나다.  그래도 '애미야! 국이 짜다!' 이런 말은 마음으로만 한다. 사실 결혼하고 나니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 앞에서 땀 흘려 밥을 해 준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고마운 일이다. 맛이 있건 없거나 간에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맞다. 맛있게 국 한 그릇을 먹고 나니 다른 반찬은 다 먹지 못했다. 미역은 초장에 버무려 다 먹었고 다른 반찬은 조금씩 남겼다. 흰쌀밥과 김치는 데코레이션이라 다 남겨서 미안할 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식판에 밥과 반찬을 퍼주며 사람이 죽고 나서 살아서 남긴 음식을 다 먹으면 천국에 가고 남기면 지옥엘 가니 살아있을 때 모든 음식은 깨끗이 다 먹어야 한다고 교육을 했었다. 지난 9년 동안 구내식당에서 남긴 음식물만 해도 제법 될 텐데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음식물쓰레기를 핑계로 천국에 못 가는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과연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에 핑계가 생겨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천국이 있기는 한 건지 원론적인 고민을 살짝 해 본다. 

 


 퇴근후 집에 와서는 어제 저녁 만들어 놓은 오트밀 미역국을 데워 먹고 로메인을 넣어 김밥을 쌌다. 돌고 돌아 늘 김밥이다. 내가 김밥을 싸도 아이들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먹지 않겠다는 의사를 몸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김밥은 온전히 다 나의 몫이라 기분이 좋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말, 특히 불금엔 짱구아빠 흉내를 낼 수 있다. 퇴근 후 맥주 한 병!



이게 찐 으른의 삶이지. 잔도 사치다. 잔은 설거지거리만 만들 뿐. 짱구아빠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일의 숙취와 목구멍에 가시 같은 감기도 오늘은 살짝 잊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걸로.




모든 직장인과 워킹맘의 이름으로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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