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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Jan 31. 2024

퇴근은 했지만 다시 집으로 출근합니다.

오십먹은 직장인엄마의 저녁

 경력단절 후 출근을 하는 일이 좋기도 하지만 힘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출근만 하고 회사에서 일만 하고 퇴근 후에 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의 직장인엄마들의 저녁은 늘 동동걸음을 하며 달린다. 퇴근은 했지만 다시 집으로 출근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현관문을 열면서부터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신발을 벗고 몇 걸음을 걸어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몸이 다 녹아 사라진 것 같다. 그리고 퇴근해 싱크대를 보면 웃음이 난다. 분명 아침 출근할 때는 깨끗하게 치워놓고 갔는데 저녁에 와서 보면 냄비며 그릇이며 수저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쌓여 있다. 가끔은 곰솥도 나와 있기도 하다. 곰솥으로 도대체 남자 3명이 했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엄마라서 매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해서 아이들 밥을 해 주나 싶어 고민이다. 고기로 돌려 막기도 며칠 하면 애매해지고 집반찬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다. 매일 다른 반찬을 대령해야 하는 엄마의 고통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말만 하고 손가락하나 까딱이지 않는 남자들만 키우는 나는 원팬음식 위주로 하는데 설거지 거리도 적어 간편한 음식들로 잔머리를 쓰곤 한다. 오늘은 제육볶음이다. 남자아이들이라 고기는 무조건이라 어쩌면 다행스럽기도 하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일의 순서를 정한다. 어제 해 놓은 빨래는 건조기에 넣어 먼지를 털어준다. 고기는 시판 양념을 쓰지 않는다. 맛이 좀 울퉁불퉁해도 아이들은 시판양념을 싫어한다. 맛보다는 성의를 따지는 편으로 내가 잘못 키운 탓도 있다. 



고춧가루, 고추, 파, 마늘, 간장, 소금, 설탕을 넣고 양파도 넣어 준다. 원래 메뉴는 묵은지를 함께 넣어 볶을 예정이었는데 잊어버려서 김치는 따로 볶았다. 미리 계란 반숙도 해서 빼놓고 고기를 센 불에 볶아준다. 먹어보면서 양념은 추가하면 된다. 


동생표 2년 된 묵은지


밥에 참기름을 살짝 뿌리고 애들은 잘 안 먹는 상추도 썰어서 두고 그 위에 제육볶음을 얹고 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팬하나 그릇하나 설거지도 편하다. 이렇게 하루가 끝이 나면 정말 좋겠지만 나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낼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고양이 주의이다. 바로 건조기에서 나온 옷은 정말 따뜻해서 고양이가 잘 앉는다. 내가 빨래를 건조기에 터는 이유는 바로 고양이 털 때문인데 고양이 주의를 주의하지 않으면 가끔 두 번 건조기를 돌릴 때도 있다. 오늘은 아슬아슬했다.

나의 빨래
빨래를 지켜보는 고양이 그 아슬아슬한 뒷모습


빨래에 못가게 했다고 화난 주인님


사람수발 고양이 수발까지 끝내면 비로소 내 시간이 온다. 빠르면 9시 늦으면 12시 그것도 아니면 새벽 2시 그리고 출근이다. 정말 몸이 지치고 힘들면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려 신발을 신으면서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출근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퇴근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차라리 출근이 나은 것 같다. 내 책상, 내 자리, 점심제공에 커피 한잔 먹을 시간도 있고 내 이름으로 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집에서는 내 이름은 없고 누구 엄마나 몇 호 엄마 일 뿐이다.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고 퇴근하면 차라리 출근이 나은 것 같다니 괴변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세상을 살아내려면 잔머리는 필수인 것 같다. 잔머리라도 있어야 이 세상 덜 힘들게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아무거나 해 줘도 잘 먹으면 좋겠지만 뭐가 문제인지 까탈스러운 입맛은 남편의 DNA라 매일 저녁이 고민거리다. 혼자 살기를 소원하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다. 아이들이 아직 미성년자이고 또 혼자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이 지금은 부족하다.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만 엄마라는 울타리가 튼튼해 보이는지 배우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오늘 나에게 할당된 밥과 빨래, 운동을 모두 끝냈다. 이제 퇴근 후 출근도 퇴근한다. 




마음의 소리 :  이 수발인생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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