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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Jan 31. 2024

도망친곳에서 다시 도망친 바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언제부터인가 나의 청력은 소머즈급이 되었다. 내가 소머즈급의 청력이 된 것은 집을 떠나 타지에서 나름 유학(?)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였다. 그리고 10년 넘게 자취생활을 하며 나를 지키는 나름의 변화였을 것이다. 항상 긴장을 하며 살다 보니 그리된 것도 같다. 지금 한집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 아들이자 서류에 당당히 존재하는 남편은 술을 먹고 들어와 코를 쉬지 않고 곤다. 물론 벽 하나 두고 다른 방에서 자고 있지만 얇디얇은 벽은 방귀만 뀌고 트림만 해도 다 들린다. 아무리 이어폰을 하고 음악을 듣거나 귀마개를 해도 내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코 고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사실 나는 결혼 전부터 심한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이 들어도 쉽게 깨고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방있지만 어디로 갈 곳은 없었다. 아무리 숨으려 해도 나를 따라오는 코골이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좁은 샤워부스에 들어가 앉아 있어도 보고 좁은 베란다에 있는 세탁실에도 앉아 있어 봐도 코 고는 소리는 벽을 타고 왔다. 결국 남은 건 좁은 드레스룸 뿐이었다. 옷들이 걸려 있고 작은 서랍장과 사용하지 않는 스탠드형 원목옷걸이와 의자까지 있어 드레스 룸은 160cm가 되지 않는 내가 눕기도 아슬아슬했다. 의자에 앉아 드레스룸 유리문을 닫았다. 조용했다. 조용한 적막이 나에게 평온함을 주었다. 그렇게 불금의 밤에 나는 드레스룸에 누웠다. 난방에 들어오지 않는 드레스룸에 냉기가 올라와 입 돌아갈까 싶어 침대발치에 있던 작은 카펫을 깔고 침대에 놓았던 전기장판을 구겨 넣었다. 전기장판의 가장자리가 살짝 위로 올라와 마치 식빵틀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멀티탭을 가져다 전기장판을 꽂았다. 오리털 이불을 덮어 정리하니 그럴싸했다. 빈틈하나 없는 드레스룸에 나도 함께 하게 되었다. 드레스룸의 문은 유리로 되어 있어 잠금장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난방과 더불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천정에 붙은 등이 있기는 하지만 센서가 있어 무언가 움직이면 불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곧 꺼진다. 그래서 팔을 휘저어 존재감을 나타내 주어야 한다.


이 좁아터진 드레스룸


 갑갑하고 몸을 움직일 틈이 없는 걸 힘들어했지만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나는 결국 드레스룸에 누워 안대를 하고 잠을 청했다. 자꾸만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나서 힘들었지만 몇 달째 떨어지지 않는 감기 탓을 하며 제발 잠들기를 기도 했다. 우리 집 고양이 겨울이가 들락거리는 통에 센서도 덩달아 불을 켰다 껐다를 밤새 반복했다. 그래도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금요일부터 주말 3일 밤을 드레스룸에서 보냈다. 멀쩡한 침대는 비었고 방에 있어야 할 엄마가 없으니 아들이 나를 찾았다. 아들의 소리에 드레스룸에서 기어 나오는 나를 보며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월요일 아침은 모든 직장인이 힘든 날이다. 나도 그렇다. 직군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내가 하는 일은 나 혼자 하기 때문에 내가 하지 않으면 대신 해 줄사람이 없다. 내가 해도 또 내가 하지 않아도 전부다 내 일이라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떠 출근준비를 하며 나는 나의 눈이 이상한 것을 알았다. 눈물이 계속 나고 눈이 따가웠다. 눈가도 짓물러져 있었다. 연고도 바르고 식염수도 넣었지만 차도가 없고 오히려 눈이 더 아파왔다. 아무리 아파도 출근은 한다고 참고 참으며 출근을 했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쉬고 왔는데 더 아픈 것 같다며 직원들도 한 마디씩 했다. 내가 주말에 드레스룸에서 잤다고 하니 먼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니 식염수로 눈을 씻어내고 환기를 시키고 먼지 나는 곳에 가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드레스룸에서 잔 금요일부터 눈이 심하게 힘들었던 것 같았다. 귀는 평온을 얻었지만 눈은 병을 얻었다. 보습크림을 눈가에 바르니 금세 짓물러진 피부가 회복을 했다. 드레스룸에 있던 이불과 전기장판은 다시 침대로 왔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시어머니 아들이자 아이들의 아빠인 남편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벽도 쳐보고 깨워 봤자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코를 곤다. 내가 선택한 삶이니 참아야 하는 게 순리인 것 같다. 혹시 나처럼 남편의 코골이를 피해 드레스룸으로 도망치는 분이 계실 것 같아 눈병을 이길 면역력과 탄탄한 호흡기를 지닌 분이 아니라면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눈을 보존하고 귀를 잃는 게 현실적으로 나은 것 같다. 오늘 나의 밤은 이렇게 또 처절하다. 인생이 그렇지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세 발짝 뒤에서 보면 영화 같고 세 발짝 다가와 보면 지옥이 따로 없으니 말이다. 나에게 지금껏 쉬운 건 없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을 안다. 그래도 잠은 좀 편하게 자고 싶은 소망을 가져본다. 오늘 밤은 평온하기를.




지난 금요일밤 나는 차라리 화장실 샤워부스에서 잤었어야 했다.  드레스룸이 아니라 화장실에 전기장판을 깔았어야 했다. 눈알이 핏빛으로 변하고 며칠 동안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재채기를 하는 것보단 어쩌면 더 괜찮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감전의 위험은 있다 하더라도 잠은 잤을 테니 말이다.


나는 오늘밤도 틀렸다. 시어머니 아들의 코 고는 소리에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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