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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r 02. 2024

우리 집엔 남자사람 셋이 산다.

몸이 아파도 수발은 계속.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감기는 해를 넘겨 2024년 2월까지 계속되었다. 내과를 지나 이비인후과 약까지 먹고서도 떨어질 기미가 없었다. 온도변화에 급하게 나오는 기침은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는 쥐구멍이라도 어가고 싶었다. 콧물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똑똑 떨어지는 바람에 마스크 속은 엉망이 되곤 했다. 밤이면 콧물이 흘러 휴지로 코를 막고 잤다. 콧물로 2월이 지나가고 있을 때 갱년기가 오는지 갑자기 열이 나다 또 추워지기 시작했다. 식욕도 없어져 목구멍으로 무엇을 삼키지 않아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출근을 해서 오심, 구토증상이 심해져 결국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기도 했다. 수액을 맞은 팔은 반찬고 알레르기로 엉망이 되었고 음식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불안한 지경에 이르렀다.

 3월의 긴 연휴가 시작되었지만 남자사람식구들은 나에게 밥을 내놓으라고 할 뿐 나의 몸상태나 식사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내가 할 일 출근하듯 일어나 움직인다. 눈물이 나는 고양이도 병원에 데리고 가주고 틈틈이 운동도 해준다. 허벅지가 터져라 하루에 100회 이상 스쿼트를 하는 내가 가끔은 대견하기도 하지만 내 몸이 아파 찢어져도 밥은 해야 한다. 우리 집엔 남자사람 셋이 살고 있다. 눈만 뜨면 나에게 먹을 걸 내놓으라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항상 날 본다.


주말이나 연휴의 시간들은 편안하기도 하지만 또 너무 힘들기도 하다. 냉장고를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해도 집밥의 반찬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다. 매일 고민을 하지만 한 바퀴 돌고 나면 별게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할 줄 아는 반찬을 만들고 있다.


멸치볶음, 어묵볶음, 돼지고기장조림


가래떡구이, 다시마튀김


밥도 한솥하고 반찬도 몇 가지 만들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아이들은 국을 잘 먹지 않고 남편은 자신이 먹고 싶은 국을 배달시켜 먹거나 먹지 않을 때도 있어서 몸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여기서 끝을 낸다. 이런 기본반찬들 몇 가지만 있으면 다른 반찬 한두 개 만들어 밥상을 차리면 된다.

 한 가지 서럽다면 서러운 것은 아무리 이 집에 한 명 있는 여자사람이고 배우자고 엄마지만 밥숟가락 놓고 나면 그냥 바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뒷정리 부탁이나 화를 낼 힘도 없어서 그냥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내가 하는 게 속편 하다. 아파서 수액을 매일 맡고 반찬고 알레르기가 나 가려워서 샤워할 때도 아프다. 오십이 넘어 이렇게 수발인생을 살지 몰랐다. 주중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출근을 하고 저녁에 퇴근해서는 집안일을 해내야 한다. 오늘같이 연휴가 붙으면 더 힘들다. 이렇게 살려고 살아왔는지 자책도 든다. 갱년기도 이제 슬슬 시동을 거는지 몸이 따라가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그 와중에 고양이님까지 한쪽눈에 눈물이 나는 바람에 지난주에 동물병원을 다녀왔다. 케이지를 못 찾아 내 배낭에 넣아 갔었지만 지하철로 한 코스라 30분도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병원을 한차례 더 다녀왔지만 여전히 눈물은 난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단다.


눈물 나는 고양이

3월이 되었고 삼일절을 시작으로 연휴가 시작되었다. 나의 긴 밥수발도 시작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해먹에 누워 햇볕에 몸을 굽고 있는 고양이가 하루종일 부러운 날이었지만 감히 주인님을 모시는 집사 주제에 부러움은 사치인 듯하다.



부디 남은 연휴 동안 무사히 밥수발이 끝나길 빌어본다.

내 수발인생도 남은 시간은 즐겁게 살아가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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