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 잡은 지 3개월.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의 ‘뒤땅’과 ‘탑핑’의 퍼레이드로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 슬슬 필드 한번 나가봐야지? 기념인데, 해외로 가볼까?”
해외 골프?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호기심의 문이 갑자기 눈앞에서 덜컥 열렸다. 허세가 머리끝까지 차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뭐가 뭔지 잘 몰랐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의 동기모임에서 '부부 골프 해외원정 제안'이 있었고, 그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OK 받고 콜!’을 외쳐버린 남편님.
쇼핑이나 관광 같은 옵션 하나 없이 오로지 3박 5일 내내 99홀까지 돌아보자는 그 무시무시한
싱글 골퍼들의 모임에 쌩판 초보인 나를 유인한 것이다.
내가 해외로 골프여행 가게 되었다고 하자, 제일 황당해했던 사람이 바로 레슨코치.
골프 용어도 제대로 못 알아듣고 있는 사람이 해외 골프를 나간다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긴, 골프채에 가득 담긴 아이언을 보고, '왜 이리 똑같이 생긴 채가 이리 많으냐'라고 해맑게 물어보질 않나, 해외 원정 골프를 고급 패키지 관광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나에게 따로 할 말이 있진 않았을게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야. 와이프들은 거의 다 초보인 것 같아~”
남편은, 여행에 대해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웃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하고, 시치미를 떼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아직 포장도 제대로 풀지 않은 반짝반짝한 골프채들을 챙겨 들고 공항으로 고우! 무조건 고우!
그런데, 출발 수속장에서 여행사가 안내문을 나눠주고 골프커버를 씌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씩 뭔가 느낌이 싸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뭐랄까? 이제 겨우 ABC 외웠는데 얼토당토않게 토플시험 대열에 끼어버린 기분이랄까?
과정이야 그렇다 치고, 목적지는 중국 광저우 사자호 CC.
천연 모래와 붉은 바위가 있는 지형으로 전경도 빼어난 것은 물론, 너무 아름다워서 최고 디자인상 수상 경력이 있다는 말 그대로 명품 코스에 난이도 최상급. 프로 골퍼들도 꿈에 그린다는 곳이다.
물 흐르듯 유려한 라인과 열대의 이국적인 풍경.
시원시원하게 공을 날린 후, 카터 타고 유유히 이동하는 모습이 그림 같다는데, 나처럼 대책 없는 초보의 눈에는 여기저기 벙커들이 사자의 입처럼 쩍쩍 입을 벌리고 있고, 저 언덕 위쪽 혹은 앞쪽에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건지 잘 보이지도 않아 아예 첩첩산중이다.
해저드와 벙커에 빠트린 공들을 찾으러 다니다 보니 오르막 내리막이 뒤섞인 너울성 그린에 산등성이와 계곡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는 필드가 난해한 수학 방정식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 와중에 공평한 건 이 사자호 코스는 장타를 펑펑 날리는 프로선수들이 오히려 난감해한다는 단타 코스도 제법 많다는 것.
곳곳에 깔린 해저드와 벙커의 늪에서 함부로 장타를 날렸다간 떨어지는 족족 다 사자호 수장 행이니, 고수들도 하수들도 그야말로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곳’이라며 다들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물론, 주야장천 기본 중의 기본인 7번 아이언만 들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단타고 장타고 다 그게 그거고, 그저 완전 손 놓거나, 넋 놓지 말고 도전! 콜~! 을 외치다 깨지고 또 깨지는 코스일 뿐이다.
공 한번 시원하게 날리고 나면, 유유자적 멋진 풍경들이 펼쳐져 있고, 뒷 팀과 앞 팀을 의식해서 빨리 치고 빠져 줘야 할 필요 없다는 이 황제 골프장에서 혼자 갈지(之) 자를 그리며 헤매고 있다.
하도 공을 잃어버리니까 캐디는 잃어버린 내 공을 찾으러 갔다가 다른 공까지 주워서 보태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 주워 주면 두 개 잃어버리고 한 개 찾아오면 그 자리에서 또. 첨벙.
주머니에서 나올 팁 한 장 받아보려고 어린 캐디들이 그리 애써 보지만 버디는커녕, 3일 동안 잃어버린 공만 수십 개. 방향 없이 날아다니는 공을 찾으러 뛰어다니는 캐디들의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소고기라도 사 먹이고 싶다’는 생각마저 저절로 들 정도다.
급기야 마지막 날, 자기가 가고 싶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중국까지 끌고 와 망신을 부른 남편이 너무 미워, 밥 먹다 눈물까지 펑펑 흘리는 바람에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해저드에서 물살을 가르며 그린에 올리는 물수제비 샷도 보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마시던 칭다오 오리지널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에게는 철인 삼종경기, 골병 버라이어티 생쇼 그 자체이자 잊지 못할 골프 입문 신고식이 되었던 광저우에서의 3박 5일.
이후 몇 번의 해외골프를 더 나갔지만, 이때만큼 처절하게 목숨을 걸었던 적도, 공 하나 날리는 것에 그렇게 감동을 받은 적도 없다.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지금도 골프는 잘하지 못한다. 남편은 ‘원래부터 운동신경이 없는 것’이라고 놀리지만, 그렇게 스파르타 교육을 시킨다고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할 것 같아서 연습도 별로 안 한다.
“인생에 어디 한 방 홈런, 대박 로또, 홀인 온만 있을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매번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골프채를 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렇게 골프는 마치 연애와 같아서 하찮게 생각하면 재미가 없고, 심각하게 여기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니 골프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은 명언이다.
사랑하는 건지, 미련이 남은 건지.., "골프에 대한 마음은, 그때 광저우에 남편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온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면 너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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