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꽃무늬 커버는 환불이 안 된다

푸시킨은 몰랐을 기억 보정의 부작용 '므두셀라 증후군'

by 유수연

창세기에 나오는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다고 한다.

장수의 상징이기도 한 이 므두셀라는 하느님이 인간을 설계할 때 ‘나쁜 기억은 잊고 좋은 기억만 남기라’는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하긴, 인간이 천년을 살다 보면, 나쁜 기억이고 좋은 기억이고를 떠나서 삶과 죽음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아무튼 인간은 누구나 이 므두셀라처럼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긋지긋했던 사랑 타령이나 악몽 같던 직장생활 온갖 악연들도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고,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 나게 그립고 아쉽게만 기억된다면 모두 다 ‘므두셀라’ 증후군에 해당한다.


“그땐 예뻤는데, 그땐 날씬했는데,
그땐 정말 잘 나갔는데….”

나이가 들수록 좋았던 일만 기억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도피 심리가 강해진다고 하는데 이 역시 기억의 왜곡 현상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비 오는 날, 우연히 들어간 헤이리 근현대박물관에서 나는 그 기억의 왜곡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저 그런 차림에, 그저 그런 사람들이, 그저 그렇지도 못한 곳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흔적들.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 버린 모래알 같은 시간들이 먼지처럼 쌓여 희미한 불빛 아래로 기억의 파편들을 소환하고 있는 곳.


세월에 지친 초라한 세간들과 시름없는 사람들의 모형들을 보면서, “그땐 그랬었지, 그래도 인간적이었어.”라며,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우월감이며, 그리움보다는 꼭꼭 감춰 놓은 비루 함일뿐이라는 생각으로 찬찬히 둘러본다.


사람들은 정말 과거가 좋았던 걸까?


곱디고운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방의 낡은 화장대를 보는 순간, 작고 허름한 방에서 어머니의 분가루를 눈부시게 휘날리며 두드려 대고 있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허겁지겁 달려와 분가루를 손으로 쓸어 모아 다시 통 안에 담으시던 어머니의 모습. 얼굴은 물론, 머리카락과 손, 발까지 분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쓴 나를

때리는 거였는지 털어주는 거였는지...

오후의 햇살에 빨갛게 달아오른 어머니의 젖은 두 뺨....


코티분은 어머니의 유일한 사치품이었다.

유리창 너머 각종 잡동사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코티분. ( 해이리 근현대박물관)

어느 날인가 어머니가 책가방을 사주셨는데, 미제가방이라고 하셨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빨간색 가방하고는 완전히 다른 그 가방이 싫었고, 특히 눈에 띄는 노란색이 너무 창피했다.


며칠을 칭얼대다 손잡이가 끊어지면 새 가방을 다시 사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기어이 칼을 들었고, 그날 어머니는 까만색 실로 그 가방 손잡이를 인정사정없이 꿰매주셨다. 바느질 기술도 없고, 노란색 실도 없었던 시절. 그건 어머니의 최선이었을게다.


결국 나는 검은색 흉터 짙은 그 가방을 3년 정도 더 들고 다녀야 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내 책상 위에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가 늘 부적처럼 붙어있었다.

누군가의 책상에 놓여 있었을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와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들 (헤이리 근현대박물관)

사실, 천방지축, 왈가닥, 말괄량이 별소리 다 듣고 다니는 아이였지만, 어머니는 진심으로 나를 여성스럽게 키우고 싶어 했다.


‘천생 여자’의 감성을 지니신 어머니는 뜨개질도 한참 가르쳐 주시고 싶어 하셨는데, 이 바늘에서 저 바늘로 왜 실들을 옮겨야 하는 건지를 설명하다 끝내 포기하셨다.


자수도 마찬가지고 집안일도 마찬가지. 어머니가 원하는 방향대로 절대 가지 않는 아이에게 ‘저래서 시집이나 갈 수 있겠냐?’라며 끌탕하시곤 했다.


그렇게 박제된 과거 속에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소품 가게에 들러 고운 꽃의 수가 놓인 가정용 소품 가게를 들렀다.


내 취향이라기보다는 어머니와 살던 시절에 대한 리스펙트라고 할까?


창호지를 바를 때도 그 사이에 코스모스까지 끼워 넣었던 어머니….

언제나 곱고 따뜻했던 어머니 스타일로 집안을 꾸며 보고 싶은 생각에 잔뜩 설레기까지 했다.


그러나 꿈은 거기까지.


예쁜 거 좋아했던 어머니를 추억하기에 딱 좋은 꽃무늬 시리즈로 이것저것 사 들고 집으로 와서 가방을 풀어보는 순간, 갑자기 멍해진다.


뜨아~~! 이럴 수가….

냉장고 손잡이 커버를 샀는데, 냉장고에 손잡이가 없다.


살림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였나?

냉장고 한번 보고 커버 한번 보고, 아무리 쳐다봐도 우리 집 냉장고는 손잡이가 없고,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꽃무늬도 현란한 냉장고 손잡이 커버였다.



결국,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던 푸시킨의 위로를 평생 맘속에 붙여두고 살았건만, 정작 나를 속인 건 삶도 푸시킨도 아닌 내 안의 므두셀라였다.

어머니를 추억하다 만난 '꽃무늬 커버'의 해프닝 앞에선 푸시킨도 딱히 해줄 말이 없었을 것이다.


곱디고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우리 어머니는 사실 야단칠 땐 누구보다 엄하고 무서웠다.


그러고 보면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긴다는 므두셀라 마케팅에 제대로 낚인 셈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시면 또 한 번 경을 칠 노릇이다. 므두셀라 증후군, 진짜 어질어질하다.



"결국 그 꽃무늬 커버는 갈 곳을 잃었지만, 덕분에 잊고 지냈던 어머니의 코티분 향기를 다시 만났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쇼핑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여러분의 므두셀라는 오늘 어떤 기억을 편집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