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상담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상담사에게 한참 내가 왜 신랑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던 참이었다.
"저래서 제가 대화를 안 하려고 해요."
상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집에서 정말 기댈 데라곤 없었겠네요."
상담사는 그제야 왜 내가 엄마와의 정서적 분리를 원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는지를 이해한 듯 했다.
사람은 누군가에겐 기대야 하고, 내게는 그게 엄마였다.
남편이 그 역할을 해주지 않았으므로.
순전히 내 입장에서의 서술이겠지만, 남편은 자기가 납득하지 못하는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은 납득하지 못한다.
"나는 내 인생 밖에 안 살아봤잖아. 그러니까 내 기준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게 당연하지."
왜 모든 일을 네 기준으로만 판단하냐는 나의 비판에 대한 남편의 답변이었다.
나는
"그러면 내 인생만 살아온 내가 너를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안 해?"
라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서 더 몰아붙이면 버럭 화를 낼 거라는 걸.
오늘처럼.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담사는 미안해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원래 저래요. 자기 불편한 얘기 조금만 하면 화내거든요. 제가 이래서 남편과 대화하는 걸 싫어해요."
나는 펑펑 울었지만 쏟아지는 눈물에 비해 마음은 비교적 평온했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아도 되니까.
사실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상담사가 나한테 너무 혼자서 버티느라 힘드니, 지금 내 상태를 남편에게 공유하자고 해서 남편을 데려간 거였다.
남편을 데려가면서도 남편이 나를 이해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여름방학 때 혼자서 여행 가는 것을 이해해 줄 정도만 되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불편한 이야기가 나오자 남편은 화를 내며 자리를 피해 버렸다.
극도의 회피형 인간과 사는 일은 피곤하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제자리를 돌기만 한다.
거기다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내가 포기하는 수 밖에.
남편을 내버려 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다 큰 어른의 귀가는 내가 신경쓸 바가 아니다.
아내의 정서 상태보다 자신의 불편함이 먼저인,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어른의 귀가라면 더더욱.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저녁을 준비했다.
설거지를 하고 택배를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베란다로 나가 상한 잎사귀를 자르고 분갈이를 했다.
뒤늦게 돌아온 남편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쉴 뿐이고, 나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으면서도 집안일을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기대를 접고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