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물건

by 숨비소리

택배가 도착했다.

얼마 전에 주문한 꽃병이다.

제작하는 제품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더니, 미리 만들어 둔 게 있었는지 이틀만엔가 도착했다.

약간 김이 빠졌다.

잔뜩 기대한 채로 기다리려고 했는데.


포장을 뜯었다.

귀여운 토끼 모양의 꽃병이다.

귀여운 토끼 모양의 꽃병이라고 하면 새하얀 도자기로 된 토끼 모양의 화병에 꽃을 꽂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꽃병은 그런 상식을 벗어났다.

일단 전체 면적의 80% 정도가 꽃을 꽂는 용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꽃병을 잡을 준비가 된 나무로 된 토끼 조각이 있다.

그리고 그 토끼의 손끝에, 실험실에서나 볼 법한 시험관처럼 생긴 자그마한 유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가 꽃병이다.

그러니까 겨우 꽃 한 송이를 꽂기 위해 80%의 면적을 나무 받침대와 나무 토끼 조각으로 채워넣은, 그런 쓸데없는 물건이다.


사실 꽃병은 쓸데없다.

실용적이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한다.

우리집같이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지 않고 물건이 많은 정리정돈 되지 않은 집에는 아무리 화려한 꽃병에 화려한 꽃을 꽂아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꽃도, 꽃병도, 쓸데없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저 쓸데없는 토끼 모양 꽃병이 너무 귀엽다.

저기에 어떤 꽃을 꽂아둘지 생각하는 게 즐겁다.

내가 방문할 꽃집에 라넌큘러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행복하다.

누군가가 꽃 한 송이만 선물해준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물건이다.

꽃 한 송이를 꽂기 위해 저렇게나 나무를 깎아서 모양을 만드는 것도 쓸데없고, 저기에 3만 5천 원이나 쏟아붓는 것도 쓸데없다.

하지만 그 쓸데없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를 위해 저 쓸데없는 물건을 살 수 있었던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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