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는 온기가 흐르기를

by 숨비소리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딸아이가 상담 보이콧을 선언했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힘든 일도 없고 할 말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나 혼자 상담을 가려고 했더니 딸아이가 '엄마 가지 마.'를 외치며 매달린다.

마치 어린아이 같다.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상담센터에 갔다.


내 상담이지만 딸아이 얘기를 더 많이 한다.

내 정신건강은 아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담선생님께 요즘의 아이 상태를 설명했다.

애교가 많아지고 장난도 많이 치고 스킨십도 자주 하고 등등.

긍정적인 신호란다.

불안정 애착인 딸아이가 조금씩 안정형 애착으로 바뀌는 중이라고.

아이가 안정 애착을 형성하면 그런 행동이 줄어들 거라고 했다.


선생님이 혹시 애착 검사를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굳이 답하지 않는다.

검사를 하지 않아도 안정형 애착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선생님은 나의 애착도 교정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40년 넘게 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마음을 들쑤시고 싶진 않다.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네요."


선생님이 말했다.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인 나는 애착의 불균형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의 딸인 나는 엄마의 손을 잡는 것조차 싫어하고 엄마와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조차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엄마인 나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웃으며 아이에게 마음껏 애정을 표현한다.


"엄마는 복 받았나 봐. 남들은 중학교 1학년 딸내미하고 사이좋게 못 지내는 경우도 많은데 엄마는 이렇게 무릎에 딸내미 눕혀놓고 쓰담쓰담도 할 수 있고. 엄마가 복이 많네. 이렇게 예쁜 딸이 어디서 나왔을까."


딸에겐 이런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선생님께서 다음 주에는 딸아이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친정엄마에 대한 이야기 위주로 상담을 진행하자고 하셨다.

내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엄마와의 관계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아빠가 더 큰 문제였다.

매일 술주정에다가 화가 나면 소리를 질렀다.

칼을 들고 온 적도 있고 목을 조른 적도 있다.

나를 방에 가둬놓고 불 질러 죽여버릴 거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아빠가 죽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아빠가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아빠가 한 행동을 이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식들에게 외면받는 동안 아빠도 외로웠겠네. 불쌍한 삶을 살았구나, 아빠도.'


하며 아빠의 삶을 동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한테는 그게 안된다.


자식에게 엄마는 온 세상이고 우주고 바람막이다.

그 우주가 나를 내팽개쳤다.

혼자서 생계까지 책임진 엄마도 삶이 고달팠고 집에 오기 싫었겠지.

나라도 그런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집엔 아빠라는 폭풍을 견디는 어린 내가 있었다.

엄마는 그 폭풍 속에 나를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거였다.


고등학생쯤 됐을 땐,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건 제발 나를 지켜달라는 구조신호였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반찬도 해놓고, 먹을 것도 사놓고, 집청소도 해주었지만,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지는 않았다.

엄마가 자기 취향대로 나를 키우려고 한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지옥 같은 구덩이에 나를 내버려 둔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자식을 끔찍하게 아낀다는 사람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는 내 곁에 없었다.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나의 강박은 거기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굉장히 모범적인 내용의 강박이지만, 내용과 상관없이 강박이라는 게 문제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조금이라도 상처받을 것 같으면 나는 신경이 곤두섰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딸아이가 조그마한 정서적 자극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강박이 되는 순간 삶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엄마에게 정서적 지지도, 인정도 받지 못했던 나는 제대로 된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지식으로 나를 채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감정이라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가득 채운 다음, 그것으로 나를 끊임없이 검열한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수용받은 경험보다 비난받고 거부당한 경험이 더 많아서인지 나쁜 점부터 찾아내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책으로 배우고 그러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 자식은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엄마의 강박이 내게도 전해졌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참 씁쓸하겠네.'


엄마처럼 불행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도록 그렇게 애를 쓰며 키웠건만, 그렇게 키운 딸이


'내 자식은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


를 외치고 있다.

엄마가 놓친 건 무엇이었을까.


만약 엄마가 지금처럼 아이와의 애착, 아이의 정서가 강조되는 이 시대의 엄마였다면 우리는 좋은 모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


엄마가 원하는 좋은 삶은 공부, 성공, 좋은 대학과 연결되어 있다.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거나 크게 성공하는 건 나의 위시리스트에 없다.

그저 자기 밥벌이만 해서 먹고살 수 있으면 된다.

나는 그저 나의 아이들에게 언제든 빠꾸 할 수 있는 포근한 가족이 되어주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엄마와 나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큰 강이다.


엄마가 캐나다에 가있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엄마에겐 잔인한 말이겠지만 엄마가 캐나다에 가고 난 다음부터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이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기쁨.

'나도 혼자서 할 수 있잖아.'라는 자신감.

상상 이상으로 엄마는 내게 무거운 족쇄였나 보다.


자식을 위해 헌신한 대가가 고작 이런 거라니.

엄마가 만약 내 마음을 알게 된다면 큰 충격을 받겠지.

자신의 삶이 온통 부정당한 것 같기도 할 거고.


하지만 나는 엄마의 삶의 의미가 되어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그냥 나의 인생을 지닌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엄마를 보며 나는 딸아이에게 내 인생을 걸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건 나와 내 아이에게 못할 짓이다.


'한참 딸아이가 나와 안정 애착을 형성해 가는 중인데 제주도로 3박 4일이나 떠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서적 안정에 대한 강박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나는 가야 한다.

잠시 떨어져 있다고 아이에게 큰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딸아이만큼 나 자신도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아이를 위해 이 여행을 포기하게 되면 아이의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자라날 거라는 걸.


"엄마~ 복숭아 줘~"


딸아이가 나를 부른다.

복숭아를 씻으며 딸아이와 수다를 떤다.


"복숭아 맛있지? 다 떨어지면 코스트코에 또 사러 갈까? 아, 설거지 귀찮아. 아빠 휴가 때는 설거지 아빠한테 해달라고 해야겠다. 아, 휴가 때 맛있는 것도 먹을 겸 캔디 상태 점검하러 리프패럿에 한 번 가볼래?"


나는 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수다를 떠는 것처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이의 애착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동안, 어쩌면 나 또한 아이를 통해 내 마음의 허전한 부분을 채우고 있는 걸까.


'어... 엄마처럼 역애착이 생기면 안 되는데.'


내 머릿속 지식이 경고음을 울린다.

한 주 동안 내 마음도 잘 살펴보았다가 다음 주에 상담선생님께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딸아이를 돌보는 동안 확실히 나의 무언가도 바뀌었다.

아이들과 나, 나와 남편 사이에 긍정적인 활기가 돌고 있다.

이제야 우리 가족이 바른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

늘 부담스럽던 집이라는 울타리가 조금씩 편하게 다가온다.

마음속에 온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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