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돌아온 지 3일째.
개학 이후 딸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한 지도 3일째.
그렇게나 꿈꾸던 혼자만의 제주도 여행이 끝나자마자 나는 현실로 복귀해야 했다.
제주도에서의 나는 맑은 제주 바다만큼이나 반짝였는데.
입고 싶었던 끈원피스를 입고 마음껏 어깨를 드러낸 채 타르트 하나를 사기 위해 제주의 좁은 골목길을 조심스레 운전해 가던 나는 활기로 가득했는데.
현실의 무게란 게 이런 걸까.
커다란 면티에 색이 바래가는 체육복 바지를 입고 머리띠로 앞머리를 밀어 올린 거울 속의 나는, 애 둘을 키우는 40대 중반의 아줌마일 뿐이다.
얼굴 가득 호기심과 감탄이 스며들어 있던 게 불과 나흘 전인데.
제주도에서의 생기가 그래도 일주일은 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집에 도착해 잔뜩 찌푸린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제주도는 내 속에서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애 병원 입원시켜라. 학교도 안 가는데 입원이라도 해야지. 언제까지 이대로 둘 건데? 나는 너 힘들어하는 것도 못 보겠으니까 병원 알아봐라."
잘 갔다 왔냐, 잘 쉬었냐, 어땠냐.
그런 건 남편의 관심사가 아니다.
남편은 그저 그 4일 동안 자신이 불편했음을 내게 쏟아낼 뿐이다.
'당신이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는 봤을까?'
하는 생각은 마음에 감춘 채 대답한다.
"나, 방금 도착했고 오늘은 좀 쉬고 싶으니까 내일 얘기하자."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남편을 밀어낸다.
결국 자기가 오늘 애 학교 보내다가 열받았다는 거다.
남편에겐 그게 제일 중요하다.
내가 잘 쉬었는가는 안중에도 없다.
남편에 대한 실망감이 마음속에 쌓인다.
내 마음이 한 발짝, 멀어진다.
마지막인 게 아쉬워 밥도 먹지 않고 여행을 했던 터라 배가 고팠다.
급하게 라면을 먹고 딸내미 방으로 간다.
"아빠한테 입원하겠다고 했다며."
"학교 가는 것보단 입원이 나을 것 같아서."
"너, 입원하면 저번처럼 엄마한테 전화해서 징징 거리는 거, 안 할 자신 있어?"
"아니."
"너, 이번에 가서도 그러면 엄마는 네 전화 안 받을 거야. 아니, 못 받아. 저번처럼 그렇게 하면 엄마 더 이상 못 버텨. 그리고 이번에 가면 네가 나오고 싶어도 의사 선생님이 퇴원하라고 할 때까지 엄마도, 아빠도, 너 안 꺼내줄 거야."
딸아이는 말이 없다.
"엄마는 너 입원하는 거 반대야. 하지만 네가 이렇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입원은 싫다고만 하면 엄마가 네 편을 들어줄 수 없어. 아빠한테 할 말이 없다는 얘기야. 네가 뭐라도 해야 엄마가 아빠를 설득이라도 해보지. 내일부터는 일단 학교에 가면 무조건 차에서 내려. 너 내리고 나면 엄마는 집에 돌아갈 거야. 내려서 학교에 들어갈지 말지는 네가 결정하고 선생님한테 연락드린 다음에 걸어서 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을 한다고?
방문이 열린다.
남편이 고개를 삐죽 내민다.
처음 봤을 때보다 표정이 밝아져 있다.
"둘이서 그 얘기해?"
하더니 문을 닫고 나간다.
아이의 등교에 대한 책임을 다시 나에게 되돌려 주는 의식 같다.
다음날, 차 안에서 머뭇거리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설명한다.
아이가 말한다.
"오늘은 교문까지만 갈게."
20여 분 만에 아이가 차에서 내린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저 표정을 남편이 보길 바랐다.
학교 앞에서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보면 아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학교에 갈래 안 갈래?"
하고 물어본 게 전부다.
당연히 아이는 안 간다고 했겠지.
그 말에 화가 난 남편은 내게 입원 얘기를 꺼냈을 테고.
나는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한다.
아이를 태우고 갈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엄마라는 안전한 공간이 곁에 있으면 계속 의지하고 숨고 싶어질 테니까.
다음날, 아이는 2분 만에 차에서 내린다.
상담실 앞까지는 갔지만 문을 열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2분 만에 차에서 내렸고 학교에도 들어갔네. 애썼구나. 잘했어. 내일은 조금만 더 가보자."
그리고 오늘, 아이는 역시 2분 만에 차에서 내린다.
오늘은 상담실에 들어가 1시간 동안 상담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왔다고 했다.
"많이 좋아졌네. 예전보다 발전했다 그지? 내일은 상담실 갔다가 담임선생님께 서류 제출하러 한 번 올라가 봐. 교실에도 갈 수 있으면 가보고."
괜한 간섭 같지만 불안이 덮치면 사고기능이 멈춰버리는 아이다.
선택 가능한 행동들을 알려주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미리 언질을 준다.
해냈다는 기분 때문인지 오늘따라 아이가 편해 보인다.
나도 마음이 편하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성장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이러다가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일단 스스로 불안함을 이겨내고 움직인 기억이 도움이 되겠지.
오늘에서야 나는 제주도를 다시 떠올린다.
옥빛이 매력적인 제주의 서쪽 바다와 맑고 깨끗한 물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주던 제주의 남쪽 바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고 바다만이 드넓게 펼쳐진 풍경.
'차라리 이 바다처럼 내 인생에도 그 무엇도 없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안쓰러워 글썽거리던 눈물.
'그래도 잘 쉬고 왔지.'
친구가 소개해준 카페에서 먹은 브런치와 파스타는 나의 인생 요리가 되었고, 일부러 찾아간 독립서점은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책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1년 내내 노래를 불렀던 판포포구에서 마음껏 물놀이도 했고 바다 아래로 사라져 가는 태양을 보며 감상에 젖어보기도 했다.
신창해안도로가 얼마나 예쁜 풍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산방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멋진 산의 모습에 넋을 빼앗기기도 했다.
'왜 옛날에는 이 근처까지 왔으면서도 산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 가자는 말을 못 했을까?'
예전에 이 근방에 온 적이 있었는데 산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저기에 한 번 가보자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주장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할 수 있잖아.'
사람은 완성형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저 조금씩 변해갈 뿐.
나는 부족한 인간이지만 자신의 부족함도 모르고 달라질 생각도 하지 않는 꽉 막힌 인간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제주가 나에게 준 건 뭘까.
단순한 회복과 쉼?
"나, 오늘은 쉬고 싶으니까 내일 얘기하자."
"아들, 딸. 엄마 지금 바쁘니까 너희 둘이서 재활용 비우고 와."
"딸, 일단 아침에 학교 도착하면 무조건 내려. 그리고 자퇴와 재입원 중에서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내려지든 간에 결정되기 전까지는 학교에 가야 되는 거야. 그러니까 입원할 거니까 학교에 안 가도 되겠지라는 생각은 하지도 마."
'단호해졌네.'
혼자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남편의 반응에 금방 예민해지고 급변하는 아이의 상태에 흔들리면서도, 아이가 아직 학교도 제대로 못 가는 이 상황에서 내가 여행을 가는 것이 옳은가 라는 자기 검열에 시달리면서도
'아니야. 가야 돼. 14년 동안이나 혼자 여행하기를 바라왔잖아. 그건 내 진짜 소망인 거야. 그 소망은 내가 지켜야지. 남들이 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내 자신은 나를 인정해 줘야지. 14년 동안 애썼잖아. 그럴 자격은 충분해. 아니, 내가 뭘 했는가 와는 상관없이 그냥 나는 그래도 돼.'
라는 생각으로 내 소망을 지켰다.
그러는 사이에 단단해진 걸까.
자기를 지킬 최소한의 공격성조차 없어서 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끌려다니기만 하던 내가
"아니. 나는 저리로 가고 싶어. 이번에는 양보 안 할래."
라는 소리를 조금씩 뱉어내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동부로 돌아볼까.'
아직 폐쇄 중이라 가보지 못한 만장굴과 길이 멀어 가보지 못한 사려니 숲길, 별건 없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풍경을 선사했던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
아직 여름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나는 내년 여름을 계획한다.
과연 내가 없는 내내 삐져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남편에게 내가 말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할 거야. 난 그럴 자격이 있어.'
또 한 번 마음을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