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부디

by 숨비소리

아이는 오늘 학교에 가지 못했다.

내 하루는 이렇듯 아이의 등교 여부를 알리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별일이 없을 줄 알면서도 불안에 떨며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그저 측은하다.

오늘은 차에서도 내리지 못했다.


"내일은 꼭 내려야 해."


오늘따라 아이에게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다.

아이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욕을 했던 남학생들에게 분명 선생님이 무언가를 말했을 것이고 화가 난 그 아이들이 자기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해는 한다.

하지만 계속 도망칠 순 없다.


"내일은 꼭 내려서 학교에 갔다 와."


다시 한번 아이에게 일러둔다.

어쩌면 내일은 오늘처럼 물러터진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각오를 다지는 건지도 모른다.


누가 자기를 괴롭히면 참고 참다가 폭발해 상대방을 잔뜩 때리는 바람에 아이였던 시절 꽤나 돈을 물려줘야 했다는 남편.

누가 놀리면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남자 화장실까지 쳐들어 갔던 나.

어째서 그런 기질은 물려받지 않은 걸까.


요즘 남편은 딸아이에게 욕을 하라고 가르친다.


"너를 괴롭히는 애들한테는 욕해도 돼. 일단 개새끼부터 시작해 봐."


남편이 딸아이를 붙잡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부모가 자식에게 욕을 가르치는 상황이 코미디 같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딸아이가 자신을 지킬 수 있었으면 하는 남편의 속상함을 알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늘 아이 탓을 하는 남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향한 애잔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욕을 가르치는 일.

이건 확실히 코미디다.

블랙코미디.


오늘은 딸아이를 데리고 정신과에 가는 날이다.

우울, 자해, 자살 욕구가 다시 생겨난다는 아이의 말을 들은 게 화요일이었던가.

그나마 예정된 병원 진료가 목요일이어서 다행이다.

요즘은 정신과 진료예약을 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

몇 안 되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은 4월에 예약을 했는데도 9월 말이 되어서야 진료가 가능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원인이 사람일 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가 사람으로 넘쳐나는 시대.

세상이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가 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사람이기보다 도구이며 부품이다.

몸뚱이가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대.

서로에 의지하며 생존해 온 인간은, 나날이 외딴섬처럼 변해가며 경쟁해야 하는 사회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알래스카에 사는 주민들이 영하의 기온에도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조금씩 적응해 간다.

힘들다고 늘 말하지만 사실 세상엔 나 따위가 감히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지독한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나는 그저 응석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나를 위로해 주지는 않는다.

고통은 개별적이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보며 나를 위로하는 일은 잔인하다.

남의 고난을 발판 삼아 나를 덜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일은 학교에 갈 수 있으려나...'


나는 등교에 집착한다.

아이의 마음 건강보다 학교가 더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등교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아이가 얼마나 괜찮아졌는지에 대한 바로미터다.

나는 벌써부터 초조하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조금 더 희망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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