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덥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진 햇살을 통해 나는 조금씩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나뭇잎 색깔이 달라."
딸아이는 미묘하게 변해가는 초록빛에서 가을을 본다.
가을쯤에는 아이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절은 쏜살같이 흘러가지만 아이는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다.
그 곁에 서서 아이를 기다리는 나는, 큰 소리로 울고 울고 또 운다.
그 소리는 내가 엄마로 자라나는 소리다.
울고 쓰러지고 포기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순간, 나는 울음소리와 함께 한 뼘씩 자라난다.
육아(育兒) 혹은 육아(育我).
오늘 아이는 교복조차 입지 못하고 힘겨워한다.
그런 아이의 등을 떠밀어 학교 앞에 데려다준다.
어차피 교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설 줄 알면서도 기다리지 않는다.
"학교에서 걸어오는 것 정도는 해야지. 평소에 운동도 안 하는데 그 정도는 해."
매정하게 차를 돌리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역시.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돌아왔다.
"오늘 못 들어갔어? 불안해서?"
"응."
"알았어. 대신 다음 주 월요일에는 꼭 들어가자. 이제는 엄마가 좀 밀어붙일 거야. 적어도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상담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은 무조건 보고 오는 걸로. 알겠지?"
"응."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나의 행동이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지 걱정하면서도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쪽을 향해 걸어간다.
이 미로를 빠져나갈 수는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집에 둔 채 병원에 간다.
요즘 목건강이 좋지 않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친정엄마가 들러 아이를 살펴본다.
"자고 있어, 계속."
조증이 생기는 바람에 약을 줄였다.
그 이후 아이는 잠이 많아졌다.
어제 약을 원래 먹던 대로 늘렸는데 과연 어떨는지.
조증 상태로라도 학교에 가서 자기를 비웃던 아이들과 한바탕 싸움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욕을 가르치던 남편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우리는 그저 마음이 아픈 아이를 보며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하는 부모일 뿐이다.
친정엄마가 아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
1시간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한참을 꼼꼼하게 들여다보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다.
"분명히 목소리가 변해있는데 성대는 멀쩡하고, 목에 노란 가래도 많이 껴있어서 분명 세균에 감염되긴 했는데 편도도, 코도 깨끗하고... 원인을 못 찾겠습니다."
일단 노란 가래가 생겼다는 건 세균에 감염됐다는 뜻이니 항생제를 먹자고 한다.
나는 늘 뭔가 전형적이지 않다.
신장염에 걸렸을 땐 열이 40.9도까지 올랐는데도 걸어서 병원에 갔다.
쓰러져서 실려 들어와도 이상이 없을 만큼 열이 나는데도 혼자 병원을 찾아온 나를 보며 의사는 의아해했다.
신장염에 걸리면 허리 뒤쪽이 아프다던데 나는 그런 것도 없었다.
한동안 극심한 전신 두드러기에 시달렸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진통이 오는 줄도, 자궁문이 열리고 있는 줄도 몰랐다.
어제는 발가락에 피가 나고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전형적이지 않게 둔한 건가.'
머리를 50cm 이상 자르고 등장한 지인을 만나도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확실히 표준 이상으로 둔하긴 한가보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을 버텨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는 여전히 자고 있다.
자는 아이를 깨워 상담을 하러 간다.
아이는 상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밀어붙여서 데리고 갈 수 있다.
요즘 나는 많이 단호해졌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단호함의 중요성을 깨달았더라면, 그래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되고 있었던 4년 전에 아이를 상담소에 데리고 갈 수 있었더라면 아이의 삶이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상담실 앞,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후회와 자책이 내 마음속으로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