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
얼마 전, 딸아이가 내게 다시 자해와 자살 충동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아이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생긴 상처가 욱신거린다.
불안이 나를 덮쳐온다.
하지만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받았기 때문인지 불안에 잡아먹히지는 않는다.
월요일 아침, 오늘도 나는 학교로 아이를 떠밀어 보낸다.
학교에서는 내내 불안에 시달린다는 아이.
예전이었다면 우울증이 심해질까 하는 걱정에 위축되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에 갈 용기를 낸다.
점심까지 먹고 오면 2만 원을 주겠다고 해서 그런 거겠지.
이게 교육적으로 옳은 방법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나는 그냥 아이가 힘든 일 앞에서 무조건 도망치는 게 아니라 불안을 껴안은 채 잠시라도 용기를 내서 힘든 일에 맞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넌 학교 갔다 오면 돈이 생기잖아. 등교가 아니라 출근이네, 출근."
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비록 아이는 여전히 학교에 가는 걸 어려워 하지만 우리는 웃을 수 있다.
웃는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거겠지.
여유는 중요하다.
고난에서 우리를 숨 쉴 수 있게 해 주니까.
하지만 상황은 그리 편안하지 않다.
딸아이는 요즘 손을 잡아달라거나 안아달라 혹은 엄마, 어디 가지 마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이가 마음이 힘들 때 보이는 신호다.
어느새 나만큼 키가 자란 사춘기 딸아이를 꼭 껴안을 수 있다는 건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굉장한 호사지만,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마냥 좋아하기도 어렵다.
'자식과 부모는 정서적으로 가까워야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인 시련을 겪어내며 매일 깨닫는 사실이다.
아이는 자기를 위해 애쓰는 엄마를 위해 억지로 힘을 내서 학교에 가고 샤워를 한다.
사춘기에 우울증.
부모의 말 따위 귓등으로도 안 들을 상태지만 엄마가 좋아서, 엄마를 위해서 아이는 억지로라도 움직인다.
딸아이와 나 사이의 유대감이, 아이를 이곳에 머물 수 있게 해 준다.
지겹도록 "딸, 사랑해."를 말하는 아빠, 누나를 위해 하기 싫은 게임도 같이 해주는 동생.
비록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내 아이에겐 기대고 의지할 가족이 있다.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부디 아이를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은 남편도 아이를 위해 애쓰고 있다.
아이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더 자주 아이에게 애정을 표현한다.
그것이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는 그런 남편도 짠하다.
분명 딸아이 때문에 복잡한 마음에 시달리고 있을 테지만 자기감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게 무슨 마음인지 본인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든 남편도 아이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만큼 남편에게도 아이는 중요하다.
남편에게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 잘 갔다고 말해줘야겠다.
궁금해하고 있을 텐데.
요즘 남편과 나의 삶은 온통 아이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