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등교 실패다.
차에서 내리긴 했지만 아이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쪽을 선택했다.
3교시에 영어 듣기 평가가 있어서 무조건 가야 하는 날인데도, 3교시까지만 있다가 오면 돈이 생기는 데도 아이는 학교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나는 아이를 혼내지 않는다.
그저
"엄마는 네가 용기 내서 학교에 다녀왔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판단해 보고 못 갈 거 같으면 집에 와."
라고 내 생각을 말할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
하지만 영어 듣기 평가를 칠 때는 학교에 가겠다고 한다.
사물함에 둔 교과서 몇 권이 없어진 이후로 아이는 또다시 불안에 시달린다.
교과서 없이 수업을 듣다가 혼날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아이는 자기가 표준적 혹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불안에 시달린다.
오전에 등기소에 가려고 했던 계획은 말끔하게 포기한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고등학교는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게 해야 하나?
그러다가 히키코모리가 되면 어쩌지?
내년이면 좀 나아지려나?
뇌에서 본능을 담당하는 영역은 활성화되고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은 떨어지는 사춘기.
타고난 예민함,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 사춘기로 인한 뇌의 변화가 합쳐져 지금 우리 집에는 대환장 파티가 열리는 중이다.
아이의 이런 변화와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걸까.
정답이 있을 수도 없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게 인생인데 자꾸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바람에 인생이 점점 무거워지는 걸까.
아이가 행복했으면 아니,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그저 보통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인데 그건 그저 부모인 나의 욕심인 걸까.
이걸 정당한 바람이라고 해야 할지 부모의 욕심이라고 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는데 질문은 매일 늘어만 간다.
대체 그 해답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세월이 흘러 시간이 지나면 이미 늦어버린 그제야 후회와 함께 그 답을 알게 될까.
하지만 그 또한 정답인지 알 수 없겠지.
그런 방식으로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그저 이렇게 해서 결과가 안 좋았으니 저렇게 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일 뿐.
나는 이래서 인생을 닮은 국어가 싫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 그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해석은 수십, 수백 개가 된다.
그중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그에 비해 수학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다.
누가 풀어도 정답은 하나다.
인생의 불확실성.
셀 수도 없이 많은 인연과 우연의 줄이 꼬이고 꼬여서 만들어진 인생은, 너무나 많은 것이 얽혀있는 까닭에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다.
아이를 다시 학교에 데려다준다.
아이는 꽤 힘찬 발걸음으로 망설임 없이 학교에 들어간다.
아침의 태도와는 영 딴판이다.
'속은 건가? 불안하다기보다는 그냥 학교에 가기 싫은 건가?'
질문은 많고 답은 없는 삶.
오늘도 나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