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편이 쉰다.
연차를 썼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한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한다.
딸아이는 오늘도 학교에 가기가 어려운가 보다.
"그래도 학교 안에는 들어갔다 와."
억지로 등을 떠민다.
가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하지만 예전보다는 쉽게 움직인다.
학교 안에 들어갔다 오는 것.
그 조건만 지키면 그 이후의 결정은 아이에게 맡긴다.
"지금 우울증이 심해진 상태라 아직은 등교로 압박하지 말래."
의사, 상담사와 나눈 얘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남편에게 전달한다.
남편은 모 아니면 도인 사람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학교가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불안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다.
그저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오늘따라 adhd약을 늦게 먹어서 그런지 움직이기가 싫다.
빨래가 다 된 걸 알면서도 소파에 가만히 누워있는다.
얼른 약효가 나타나길 기다릴 뿐이다.
adhd약은 확실히 효과가 좋다.
약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adhd 환자들이 모든 걸 adhd탓으로 돌린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모든 것의 원인이 adhd일 수는 없다.
만약 그 행동의 원인이 adhd라면 약을 복용했을 때 증상이 사라지거나 약해져야 한다.
나의 경우 '무슨 일이든 미루고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증상'은 adhd 때문이다.
약을 먹고 나면 부지런히 움직이고 할 일은 바로바로 해버린다.
그에 비해 정리정돈을 싫어하고 잘 못하는 건 기본 성향이다.
그건 약을 먹어도 여전하다.
무엇이든 잘 잊어버리고 물건을 놔두고 오거나 잃어버리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물건을 두는 건 adhd 때문이다.
약을 먹은 이후로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두고 오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덤으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다가 팔을 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문을 닫아버리는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약효과가 나타난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빨래 좀 같이 개키자."
남편을 불러낸다.
중간중간 게임을 하러 가기는 했지만 남편은 빨래를 개켜서 정리하는 것까지 도와준다.
그 정도만 해줘도 한결 수월하다.
그 사이, 아이가 돌아왔다.
오늘은 위클래스에서 한 시간 정도 상담을 하고 왔다고 했다.
보통 때였다면 이 상황에 대해 화를 냈을 텐데 내가 아침에 전한 내용 때문인지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잠시 후, 남편이 아이방에 간다.
"잠들었어."
"약을 먹어서 조증이 오면 잠을 안 자는데 조증이 사라지면 잠이 늘더라.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잠 잘 자는지 보래. 3시간 밖에 못 잤는데도 기운이 쌩쌩하면 조증인 거라고. 그러면 약을 바꿔야 한대."
남편에게 설명한다.
남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남편에게 화가 나지는 않는다.
남편은 그저 제대로 대화하는 모를 뿐이다.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기는 했지만, 남편과 나는 어린 시절, 건강한 가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고 배우지 못했다.
남편은 그저 막연하게 '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이상향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디에 같이 가자고 할 때 우리가 거절을 하면 삐진다.
다른 가족의 상황과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영화를 보러 가자는 남편의 제안을 거절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삐졌다.
나는 내켜하지 않는 아들을 설득해 남편이 원하는 대로 극장에 갔다.
그리고 2시간 반동안 보고 싶지도 않은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재밌었어? 2시간 반동안 안 힘들었어? 같이 와줘서 고마워.'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가족과 함께 했다, 목표를 이뤘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다.
하지만 어쩌면 남편은 그저 무조건적인 애정과 지지가 받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본인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가족에 대한 나의 이상향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나의 경우, 아버지가 가장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가족이라고 했을 때 남편 혹은 아이 아빠의 존재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내가 그리는 가족 속에는 나와 아이들만 있다.
내가 성장한 가정환경의 특수성, 아빠 혹은 남편으로써의 역할에 대해 배우지 못한 남편의 만남은 아빠와 남편의 흔적이 미미한 가정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나는 그 가정의 형태를 바꾸려 한다.
남편에게 아이 상태를 설명하고 집안일도 부탁한다.
귀찮아하는 남편을 가정생활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남편은 정서적으로 유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과하게 자기중심적이다.
화가 나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의 반응 또한 유아적이다.
그 결핍을 채우는 건 결국 내 몫이다.
나도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를 품은 상태로 마음이 아픈 딸아이와 정서적 허기가 있는 남편을 돌봐야 한다.
"다 하려면 힘들지 않으세요? 남편한테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상담선생님이 물었다.
"아니요, 요즘은 안 힘들어요. 내면의 힘이 생긴 건지... 힘들면 쉬겠다고 말하면 되고 남편이나 아이들, 친정엄마한테 도와달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내가 변했다고 말했다.
상황은 그대로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지자 모든 것이 달라진다.
어젯밤, 불안에 시달리던 아이는 결국 어깨에 10개가 넘는 칼자국을 만들고야 말았다.
나는 그저 아이를 껴안으며
"불안하다고 그렇게 하지 말고 엄마한테 와서 자해를 하고 싶을 정도로 불안해서 내일 학교 못 갈 것 같다고 말을 해. 알았지? 너한테 이러지 마."
라고만 말했다.
옛날이었다면 절망적이었을 이 상황이 지금은 그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보인다.
조금씩 싹트는 나에 대한 믿음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