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딸아이가 먹는 약의 용량을 늘렸다.
보조치료제도 추가했다.
아이가 또다시 자해를 했기 때문이다.
조증 때문에 약을 줄인 게 실수였던 걸까.
괜히 내가 예민하게 조증인 것 같다고 말을 해서 그런 걸까.
'아니야, 조증이 오면 약을 줄이거나 끊는 게 기본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자책, 후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깡그리 모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지금만 살아가자고 나를 토닥인다.
의사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아침약을 추가하는 건 어떨까요? 딸아이도 아침약을 먹어야겠다고 이야기하던데."
-아침약을 추가할 수는 있는데 전에 먹었을 때도 효과가 없어서 추가하는 게 의미가 있겠나 싶네요. 용량을 늘리면 학교에서 졸게 되는 문제도 있고.
"그래서 저는 저녁약을 조절해 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밤에 자기 전에 자해 충동이나 우울감이 많이 올라와서요."
-그럼 일단 이 알약의 용량을 늘려봅시다. 지금 제일 약한 단계로 쓰고 있는데 한 단계 올리도록 하고... 그리고 보조치료제도 써야 될 것 같기는 한데...
의사가 보조치료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딸아이처럼 자해를 하거나 우울증 약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을 때, 약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약.
우울감을 빠르게 낮춰주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강한 약.
-아침에 못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건 괜찮아요. 어차피 지금도 학교에 제대로 못 가는 중이기도 하고, 등교보다는 우울감이나 자해 충동부터 줄이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서."
-그럼 그렇게 하고 일주일간 지켜본 다음 약을 또 조절해 봅시다.
그렇게 아이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런 급격한 변화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건지 좌절감이나 허탈함이 생기지는 않았다.
용량을 늘리면서 노란 알약이 분홍색으로 변했다.
"약 색깔이 예뻐졌잖아?"
딸아이가 좋아한다.
천하태평이다.
하지만 거부하지 않고 약을 잘 먹어주니 그저 고맙다.
어젯밤, 저녁 9시에는 늘 먹던 약을 복용하고 자러 가기 30분 전에 보조치료제를 복용했다.
그리고 오늘, 금요일 아침 10시.
아이는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너무 못 일어나면 반알만 먹이시고 시험이 있거나 하는 날에는 안 먹여도 됩니다.
오늘 밤에는 반알로 잘라서 먹여야겠다.
언제쯤 아이는 다시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게 될까.
왜 약을 먹는데도 기분이 올라오지 않는 걸까.
'창문에 못질 해두길 잘했지.'
아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혹시나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봐 창문이 열리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었다.
창문에 못을 박아야 하고 집에 커터칼이나 눈썹칼을 놔두지 못하는 삶.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갈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어차피 1시에 상담을 하러 가야 하기도 해서 오늘 등교는 속 시원하게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지금 이 순간만 살아가기로 마음먹기 했지만...
'학교가, 친구가, 인생에서 그리 중요한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를 돌이켜보면...... 학교가 내 인생에서 특별히 중요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친구는...... 글쎄.
중학생일 때도 고등학생일 때도 굉장히 친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내 친한 사람들, 나이는 다르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고 힘들 때 이야기 나누며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만났다.
내 친한 사람 중에는 남편 친구의 아내도 있다.
꼭 학교에서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아이가 살아가는 모습이 평생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인생을 하나의 정지된 장면, 끝까지 변하지 않을 그림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처럼 계속 변하고 움직이며 그 누구도 마지막이 되기 전에 그 결말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너무 우울해하지 말자.
이 장면도 곧 다른 장면으로 바뀔 테니까.
나는 요즘 자퇴도 생각하는 중이다.
하지만 자퇴 이후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
아이 또한 그저 학교를 안 다닐 수만 있다면 자퇴든 뭐든 상관없다고만 생각할 뿐 그 이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목적이 있는 자퇴는 허용할 수 있지만 도망치기 위한 자퇴는 허용불가다.
아이는 스스로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치겠다는데,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솔직히 평소에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아, 아니다.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우울이 심해 좋아하는 게임을 할 기운도 없다고 말하는 아이다.
식욕도 사라져 2~3주 사이에 3kg이나 체중이 줄어들었다.
기운 회복이 먼저, 미래는 그다음이다.
지금, 여기, 이 시간.
당분간은 그 좁은 시간의 틈에서만 살아가자고, 아이를 잡아당기는 우울의 늪에서 아이를 빼내는 일에만 집중하자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