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는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했다.
약을 반으로 쪼개 먹였는데도 아침 9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학교보다는 우울증을 개선시키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늘 초조하다.
출결문제는 현실이니까.
아이는 겨우 교무실에 가 선생님을 만나고 이내 돌아온다.
"엄마 볼 일 있는데 엄마 따라 가자."
나는 아이를 태우고 구청으로 향했다.
몇 년 전 나는 개명을 했다.
이름은 예뻤지만 한자가 문제였다.
들은 얘기로는 아빠가 술에 취한 채 동사무소에 가서 나와 육촌쯤 되는 누군가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다.
한자는 동사무소에서 즉석으로 골랐다고 했다.
그렇게 무성의하게 지어진 내 이름은 어느 작명소, 어느 철학관에 가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100점 만점에 20점?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짜증이 나는데 나쁜 소리를 계속 들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이름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쁜 일들이 혹시 이 이름 때문에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그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름을 바꿨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알코올 냄새만 풍기던 내 이름은 남을 돕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이름을 바꾸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건 그 이후다.
인감부터 시작해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직장, 홈페이지, 카드......
바꿔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신경 써서 명의를 바꾸고 이제는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등기부등본이 남아있을 줄이야.
구청에 간 건 마지막 남은 그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딸아이는 왜 자기가 따라가야 하냐고 물었다.
"너 혼자 두기도 좀 그렇고...... 엄마가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러지."
아이에게 솔직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물론 아이가 그런 나의 의도를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구청에서의 일은 금방 끝났다.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물론 민원인이 들어와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그 분위기, 조용한 가운데 키보드가 따각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남의 직장에 무단 침입한 듯한 기분을 느끼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 이것이 직장인이구나.'
나도 공무원이고 직장인이지만 8살~13살짜리 아이들과 시끌벅적하게 생활하는 나의 직장생활과는 아예 느낌부터가 다르다.
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제 남은 건 등기소에서의 일처리뿐이다.
등기소는 법원 건물에 있다.
"엄마 개명할 때 여기 왔었는데."
"나도 이름 바꿔줘."
이건 또 무슨 느닷없는 얘기일까?
딸아이는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그래서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솔깃한다.
아이가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마음의 병도 낫질 않는 상황.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은 지금 붙잡을 지푸라기를 찾고 있다.
"우리 애, 이름 바꿨어."
얼마 전,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하며 내게도 아이 이름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작명, 철학관, 종교, 무당...... 그 모든 게 지푸라기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등기소에서 작성하는 서류는 꽤 복잡했다.
결국 모르는 건 물어가며 서류를 작성한다.
담당자는 굉장히 무뚝뚝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인상과는 다르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른이라는 거, 귀찮고 잘 알지도 못하고 어렵기만 한 일도 어쨌든 해내야 하는 존재들이구나.'
아이가 나를 보며 모르는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이 그리 어렵거나 두려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으면 했는데, 정작 내가 어른의 삶을 배우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서류는 접수 됐고요, 혹시 더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연락이 따로 갈 겁니다. 별 문제없으면 3~4일 후에 완료됐다는 연락이 갈 거예요."
드디어 일이 끝났다.
귀찮고 복잡하고 헤매긴 했어도 혼자서 해냈다는 사실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늘 엄마가 대신 처리해 주거나 나를 도와주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해냈다.
등기소에 전화해 질문을 하는 것도, 일처리 하는 과정을 알아보는 것도, 낯선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어지간히도 어린애처럼 자랐구나, 나는.'
다 큰 성인인데도 자식을 도저히 놓지 못하던 엄마가 나를 놓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못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안 해봤을 뿐이라는 걸.
혼자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빼앗겨 버린 나는 어른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렇게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