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나도 주말이 좋다.
하지만 그 이유는 남들과 조금 다르다.
내가 주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딸아이가 등교를 하지 않아서다.
등교가 없으면 갈등도 없다.
어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 상담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의논한 결과, 딸아이에게 학업 중단 숙려제가 필요하다고 결정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차도에 뛰어들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 순간, 학교는 비상이었을 것이다.
기간은 최대 4주.
운이 좋은 건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추석연휴가 끝난 다음부터 숙려제 기간이 시작된다.
꽤 오랜 기간 등교에 대한 압박 없이 지낼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의무적으로 지정된 기관에서 상담을 받아야 하고 개인적으로 받고 있는 상담도 계속 이어가야 하지만 등교하는 것보다는 수월하겠지.
"학교 안 가는 동안, 낮에는 휴대폰 못하게 할 거야. 대신 엄마랑 쉬는 동안 이것저것 해보자."
근처에 있는 공방을 검색해 본다.
비누, 그릇, 목공예, 디퓨저.... 종류가 다양한다.
딸아이는 일단 알겠다고 한다.
저러다 분명 그때가 되면 귀찮다며 나가지 않으려고 하겠지.
나 또한 분명 그럴 것이다.
타고난 에너지 레벨이 무척 낮고 내향적인 우리 모녀에게 외출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집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으니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다.
금요일은 내가 상담을 받는 날이었다.
하지만 항상 딸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이번 주에 관찰한 딸아이의 변화를 상담선생님께 전달한다.
아이가 조금씩 자기감정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자각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한다.
딸아이가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자 의외로 선생님이 이름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대답한다.
"성명학을 믿는다기 보다는 자기 마음에 드는 이름으로 바꾸고 그 이름으로 불리는 행위가 긍정적인 마음이 자라는 씨앗이 될 수 있거든요."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의 의중을 다시 한번 물어본다.
아이는 이름을 바꾸는 일에 동의한다.
"어떤 이름이 좋아?"
"중성적이거나 아니면 좀 남자 같은 이름."
"지금 이름은 여자 느낌이라 싫어?"
"응."
생각해 보니 나도 어렸을 때 너무나도 여성스러운 내 이름이 싫었다.
이름만 들으면 조신하고 얌전하고 여성스러울 것 같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까.
딸아이도 그렇다.
둘 다 테토녀인 모녀는 여성스럽다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과 크게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선까지 닮을 줄이야.
유전의 힘은 어디까지인 걸까.
'유전이 전부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딸내미가 이름 바꾸고 싶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남편과 의논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남편이 난폭한 사람이 아닌데도 말을 꺼내는 게 무섭고 불안해서 늘 뒤로 미루게 된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무섭고 불안해하면서도 말을 꺼내기는 한다.
"이름을 바꾸는 게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상담선생님도 말씀하셨어."
서둘러 덧붙인다.
내가 아이의 말에 휘둘린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이.
남편은 듣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는다.
회피형 인간인 남편은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대부분 침묵을 지킨다.
예전에는 그럴 때마다 안절부절 거렸지만 지금은 '대답 안 하면 하라는 얘기겠지, 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답을 하지 않는 대신 나의 결정에 태클을 거는 경우도 잘 없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편하기도 하다.
오늘은 커피숍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별 일도 아닌데, 나는 그 말을 꺼내면서도 횡설수설한다.
"어디에?"
"저기 xx 근처에. 사실 나, 무슨 공모전 있어서 글 제출 하려고 하는데 카페 가서 쓰면 잘 써져서. 갔다가 피자 사서 올게."
긴장은 나를 더듬거리게 만든다.
아직도 내 생각이나 계획을 남에게 전달하는 게 어렵다.
"열심히 해서 인세 받을 수 있게 해 볼게."
"인세로 떼돈 벌 수 있도록 열심히 해봐."
남편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사라져 간다.
그러고 보면 남편도 조금 변했다.
혼자 코스트코에 다녀온 내게 전화를 걸어 언제 오냐고, 짐 들어줘야 하지 않냐고 물어본다.
원래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이었다.
짐을 들어주지 못하게 되자 미안하다고 사과도 한다.
남편이 내게 사과하는 건 처음이다.
어제는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그 많은 설거지를 다 해놓았다.
"아... 힘들어. 내일 설거지해야지."
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그걸 들었나 보다.
"고맙네. 덕분에 내일 편하겠다."
나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oo 씨(나)가 변하니까 남편도 변하는 거예요."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측은해 보였다.
남편 또한 나처럼 정서적 결핍을 지니고 있다.
올바른 부모, 남편으로써의 역할을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남편도 그저 미숙할 뿐이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조금씩 남편을 이해하고 챙기기 시작한 것이.
남자들은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결핍이 생기면 그걸 아내에게서 채우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엄마가 되어주기로 했다.
남편이 출근할 때 내가 일어나 있으면 현관에 배웅도 가고, 남편이 대꾸를 하든 말든 뜬금없이 방에 가서 이런저런 잡담도 하고 고맙다, 고생이 많다, 수고했다 같은 말도 해주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으로 둔감하지만 남편 또한 남편만의 방식으로 노력 중이라 생각하니 미움이 사라졌다.
"우리 집은 한부모 가정이야."
나는 농담처럼 지인들에게 그런 말을 던진다.
남편은 아직 내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가장의 모습이 아닌, 채워지지 못한 정서적 결핍이 생겼던 그 시절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이제 내게는 나를 단단하게 세울 힘이 생겼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라는 자아는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기둥으로 자라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늘 남편에게 믿음직한 구석이라곤 없다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왜 나만 기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기둥이 될 수도 있는 건데.
그래서 나는 이 집의 기둥이 되기로 했다.
딸아이가 괜찮아지고 남편의 마음이 어른으로 자라날 때까지.
"oo 씨(나) 같은 내담자만 있으면 좋겠어요."
매주 매주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이니 상담하는 보람도 느껴지고 마음이 뿌듯하단다.
뭔가를 알려주면 그걸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변화를 관찰하고 알린다.
그걸 통해 다시 피드백을 받고 행동을 수정한다.
일상 속의 사소한 변화를 캐치해 정보를 제공하니 상황을 파악하기도 쉽고 행동방침도 더 정확하게 세울 수 있다.
"oo 씨(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걸 기억하세요."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는 내가 생각했듯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몇 번이고 들었던 말이지만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나는 좋은 사람이다.
딸아이의 날갯짓 하나가 나를 바꾸었다.
그리고 이제 그 날갯짓은 우리 가족을 바꾸고 있다.
그 변화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신한다.
분명 그곳에서 우리는 웃고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