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뜬다.
온몸이 뻐근하고 굉장히 무기력하다.
하지만 아이들 학교는 보내야 하니 아이들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 몸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나도 함께 아침밥을 먹는다.
30년 넘게 아침밥을 먹지 않았지만 adhd약을 먹은 이후로는 아침밥을 꼭 먹으려고 노력한다.
약을 먹고 나면 오후 늦게까지 식욕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살이 더 빠지는 건 막아야겠기에 아침밥을 먹고 군것질도 한 다음 약을 먹는다.
약을 먹고 30~40분쯤 누워있다 보면 갑자기 몸을 일으켜 움직이게 된다.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작은 알약 하나가 어긋난 호르몬의 균형을 맞추고 나를 움직이게 한다.
호르몬이라 이름 붙여진 정체 모를 그것들에 의해 움직이는 나는, 살아있는 정밀한 기계다.
설거지를 하고 그릇들을 정리한다.
쌓여있는 빨래더미를 분류해 놓는다.
오늘은 세탁기를 돌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건조기 속 빨래는 나중에 개키기로 결정한 다음 나는 다시 소파에 드러눕는다.
요즘은 약을 먹어도 움직이기가 힘들다.
아무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나 보다.
아이가 등교를 하지 못하고 자해를 다시 시작하였으며 학업 중단 숙려제를 신청하기로 결정한 이 모든 상황이 달가울 수는 없겠지.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는 하지만 마음 한 켠은 분명 괴로울 테지.
그래도 예전처럼 너무 힘들어 뇌가 멈춰버린 상태는 아니라 다행이다.
오늘은 내가 상담을 가는 날이라 낮에 친정엄마가 와서 딸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어제는 좀 나아 보였던 아이가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고 말한다.
중학생이지만 마음이 아픈 터라 혼자 둘 수가 없다.
딸아이방에는 잠금장치가 없다.
창문에는 못이 박혀 있다.
죽고 싶어 창틀에 앉은 적이 있는 아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목을 맨 적이 있는 아이.
친정엄마에게 14살짜리를 부탁하는 건 아이를 잃을까 봐 겁이 나서다.
그래도 예전에 겪었던 힘든 일들이 지금 이 상황을 버텨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나를 낳는 바람에 엄마로서 미숙했던 친정엄마는 내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젊은 외할머니인 까닭에 딸아이의 상태, 내가 한 결정을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엄마와 정보를 공유하고 힘들 때 같이 의논할 수 있다.
나는 자해를 동반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터라 아이의 처지나 마음을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지금 이 일도 언젠가는......'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일이 언젠가는 우리 가족의 삶에 도움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벌써 도움을 받고 있다.
아이로 인해 무너져 내린 마음을 일으켜 세우느라 휴직을 하고 병원 진료,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안개처럼 흐릿했던 '나'라는 존재가 점점 뚜렷해지면서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해 행동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폐허 위에, 단단하게 나를 세우는 일.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결코 하지 못할 일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정엄마는 하나님의 큰 뜻이 어쩌고 하지만 만약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그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나 하나 바로 세우겠다고 내 새끼의 팔을 칼자국으로 가득 채운 그 방식에 어느 부모가 동의할 수 있을까.
지금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런 의미가 담겨있지 않다.
그저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내가 존재할 뿐이다.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이다.
아이의 팔에 생긴 저 수많은 상처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이 일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나의 의지.
언젠가 지금 일어나는 이 일에 대해 무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날도 오겠지.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내 팔을 보며 말한다.
"잘 안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네."
20대 초반 내가 내 팔에 남긴 생채기들.
"응, 근데 스모크햄 같지 않아? 왜 이렇게 그었나 몰라."
내게 이제 그 일은 가볍게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 있는 과거다.
6개월 만에 몸무게는 10kg 이상 빠졌고 매일 내 몸에 상처를 내야만 버틸 수 있었던 죽도로 힘들었던 시간들.
그 무거웠던 시간들도 이제는 가볍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되었다.
이 일도 언젠가는 그리 되겠지.
딸아이가 이상하게 조용하다 싶더니 이불을 껴안은 채 잠이 들었다.
약기운이 아직 남아있나 보다.
불을 끄고 살포시 문을 닫는다.
마음속에는 폭풍이 몰아치지만 집은 고요하다.
오랜만에 꽃을 가득 피운 아메리칸 블루를 보며 나는 연신 예쁘다를 외친다.
마음을 휩쓸고 있는 비바람 속에서도 저 작고 파란 꽃을 보며 예쁘다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