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의 희망

by 숨비소리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딸아이가 눈을 떴다.

치료보조제를 먹고 잠든 날은 아침에 도통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학교보다는 감정기복을 안정시키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 약을 먹이긴 했지만 아이가 등교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담임선생님께는 일어나는 대로 아이가 교무실에라도 들릴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께 연락을 할 때마다 나는 늘 죄스러운 마음이 된다.

등교를 거부하고 자해를 하며 자살 충동이 있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교사 그리고 학교에 얼마나 큰 마음의 짐이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아이에게 신경 쓰는 학부모도 잘 없잖아. 그러니까 당당해야지.'


아이가 우울증에 걸린 게 내 탓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도, 상담도 꾸준히 다닌다.

상담이나 처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아이를 꾸준히 관찰하고 그 내용을 의사나 상담선생님께 전달한다.

학교에서 알아야겠다 싶은 내용은 학교에도 알린다.

아이를 위해 휴직도 했고 아이가 위태로운 상황엔 늘 곁에 어른을 두어서 혼자 있지 않도록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남편이 이 상태로 내년에 복직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복직해야지."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나 또한 확신할 수 없다.

경제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복직을 해야 한다.

병휴직의 첫 1년은 본봉의 70%, 2년째는 50%의 월급이 나오긴 한다.

그렇기에 휴직을 해도 부담은 덜하다.

하지만 상담이니, 병원이니, 지출할 돈은 더 불어나있다.

게다가 아이가 계속 저 상태라면 아이를 두고 출근하기도 어렵다.

친정엄마에게 매일 부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나는 학업 중단 숙려제를 신청했다.

등교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해 가며 우울증과 불안증상을 낮추는 게 목표다.

등교가 가능할지는 그 이후에 판단할 생각이다.

다리가 부러진 아이가 걷지 못한다고 해서 그 아이를 못 걷는 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일 텐데... 마음이 아픈 것에 대해서는 세상이 꽤 냉혹한 것 같다.


비록 아이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자해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자기 마음을 인지하고 설명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교무실에 가려고 학교에 들어가다가 모르는 선생님과 마주치는 바람에 교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선생님도 무서워?"

"모르는 선생님은 무서워."


나는 어떤 사람이 제일 무서운지 묻는다.

아이는 잠시 생각한다.


"학교에 있는 모르는 어른들이 제일 무섭고 그다음은 학교나 동네에 있는 또래 아이들이 무서워. 그리고 그다음은 동네에 있는 모르는 어른이 무섭고."


"이유는?"


"학교에 있는 모르는 어른은 나를 혼내거나 아니면 걸려서 벌 받게 될까 봐 무섭고 학교나 동네에 있는 애들은 내 얘기할까 봐 무서워. 동네에 있는 어른은 그냥 사람 많은 게 싫어서 그래."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은 게 싫기 때문에 사람이 있는 건 다 별로지만 자신의 생활공간이 아닌 곳에서 만나는 어른이나 또래는 무섭지 않다고 한다.


"아침에는 기분이 조금 내려가 있다가 낮이 되면 점점 올라가서 오후 5~6시쯤이 제일 좋아. 그러다가 다시 내려가면서 오후 10~11시 사이에 최악이 되었다가 새벽 2시쯤 되면 다시 좋아져."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갔지만 아이가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발전이다.

그전에는 자기가 무슨 마음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상담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가 부엌에 왔다.


"엄마, 뭐 해?"

"소고깃국 끓여."

"내가 간 봐도 돼?"

"그래."


내 입에는 간이 딱 좋은데 아이는 계속 싱겁다고 한다.

한참을 더 넣은 후에야 아이는 합격을 외친다.


"밥 말아먹기에는 좀 싱거울 거 같은데."


라는 말은 남겼지만 말이다.


'안아줘, 가지 마, 같이 놀자'라는 말과 함께 방에서 나오지 않는 행동은 아이가 우울증이 심해질 때 보내는 신호다.

그런 아이가 부엌으로 왔다.

종이 한 장만큼의 차이지만 어제보다 나아진 아이를 보며 희망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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