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 수 있을 거야

by 숨비소리

모두가 잠든 화요일 새벽, 딸아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


내 품 안으로 파고드는 아이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왜? 왜 이래?"


"엄마... 밤에 자다가 깼는데... 죽고 싶어서... 창문 방충망도 뜯고... 충전선으로 목도 조르고... 그러다가 죽는 건 싫어서 119에 전화했어..."


약기운에 취해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도,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할 수도 없었지만 아이를 안은 두 팔을 통해 전해지는 아이의 떨림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가, 일단 약부터 먹자."


약을 먹은 아이를 꼭 껴안고 누웠다.

조금씩 아이가 안정을 되찾아간다.


딩동-


고요한 집안에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 앞에는 경찰관과 구급대원이 서있었다.


경찰은 나와 아이를 분리한 다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여전히 잠결이었지만 나는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월요일에 병원에 갔었다는 얘기, 공황장애가 시작되고 있고 내일 학교에 가야 해서 자기 전에 추가로 복용하는 약을 먹지 않았다 등등.


경찰관이 연결해 준 상담사와 통화를 한다.

나 그리고 아이와 대화를 나눈 상담사는 지금 당장 응급 입원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가 아이를 잘 관리하고 있고 아이도 자살충동이 올라오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바르게 대처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머니는 정말 아이 잘 돌보고 계시는 거예요."


죄책감에 시달리던 내게 상담사가 건넨 한마디는 나를 구원해 주는 동아줄이 된다.


"이게 무슨......"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 깨어난 남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경찰관이 간단하게 사태를 설명한다.

조용히 경찰관의 설명을 듣고 난 남편은 아이의 방으로 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감싸 쥔 남편.

남편이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이제야 남편은 딸아이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은 것 같았다.


결국 남편은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감당할 수 없는 거겠지,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나는 가끔 울먹이기도 하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일을 마무리한다.

눈물은 나오지만, 괴롭고 힘들고 속상하지만,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모든 절차가 끝난 후 경찰관과 소방대원들이 집을 떠나간다.

나이가 많은 경찰관이 아이에게 말했다.


"학교 그거 뭐라고. 그런 거 안 가도 되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에디슨도 학교 안 나왔지만 큰 기업 세웠잖아. 어머니도 너무 학교 신경 쓰지 마세요. 학교 그거 좀 안 다니면 어떻습니까."


남의 자식이라 하는 말이겠지만 그 말이 내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젊은 경찰관과 소방대원도 아이에게 한 마디씩 건넨다.


"이런 일이 또 생기면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 전화해도 돼. 알았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던 소방대원이 내게 말했다.


"어머니, 아이한테 왜 119에 전화했냐고 혼내지 마세요.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도 되니까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부탁이었을까.

그런 세심함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현관문을 나서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며 감사함을 전한다.

뉴스에서 보는 세상은 무관심과 불친절로 가득 차 있었는데 화요일 새벽, 우리 집에 왔던 모두는 친절하고 다정했다.

내가 복이 많은 걸까, 딸아이가 복이 많은 걸까.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내일 아침이면 경찰서, 교육청, 학교... 다 발칵 뒤집어지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를 토닥여 재운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7시도 채 되지 않았다.

아이는 내 곁에서 깊게 잠들어 있다.

얼른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아이는 내가 잘 챙길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회사 잘 다녀와.


그런데 남편이 안방 침대에 누워있다.


"출근할 시간 지났잖아. 출근 안 해?"

"어, 안 하려고. 출근 못 하겠다."


결혼 후 14년 동안 처음 보는 남편의 모습이다.

남편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침 내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경찰서다.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 차 전화했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지금까지 어떤 치료를 받아왔고 학교에서는 이 일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다.


"학교에서도 많은 도움 받고 있고 학교에서도 다 알고 계십니다. 안 그래도 학업 중단 숙려제 신청하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행여나 학교로 불똥이 튈까 나는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경찰관이 아이 학교의 담당선생님과 이 일을 의논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


"그래도 어머니가 정말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계시네요."


또 다른 위로.

모든 사람이 나를 토닥거리며 괜찮다고, 넌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내게 와서는 안아달라고 한다.

나는 아이를 꼭 껴안는다.


"학교 안 간다고 하니까 좀 나아?"

"응."

"그래. 당분간 학교 안 갈 거니까 마음 편하게 가져. 알았지? 아빠 큰 방에 있으니까 가봐."


보통 때라면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던 남편이, 오늘은 지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다.

딸아이가 남편 곁에 눕는다.

남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쓰다듬는다.

남편에겐 이 사태도, 이런 감정도 처음이다.


"딸내미가 난 놈은 난 놈인가 봐. 전화 한 통으로 소방서, 경찰서, 교육청, 학교까지 다 들썩이게 만드네. 나중에 큰 사람 되겠어."


나는 농담처럼 한 마디를 던진다.

하지만 이내 진지하게 말한다.


"딸내미는... 외가, 친가, 엄마, 아빠의 예민한 부분은 다 타고난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딸내미 볼 때마다 너무 짠해. 태어날 때부터 인생 난이도가 높아지는 기질만 타고났잖아. 그러니 애가 얼마나 힘들겠어......"


겨우 만 12세.

그 어린 아이가 죽고 싶은 본능과 살고 싶은 이성 사이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측은하면서도 고맙다.


살아있어줘서,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너는 네 생명과 함께 엄마, 아빠도 살려낸 거야.


남편은 아무런 대꾸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인정의 의미를 담은 침묵이다.

이제야 남편은 아이가 가진 괴로움의 깊이가 얼마만큼인지 깨닫고 있다.


'차라리 잘 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가 119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남편도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성적이며 공부 걱정을 하긴 하지만


"공부는 나중에 따라잡아도 돼. 지금은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게 먼저인 거 같아."


라는 말에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아이는 언제쯤 괜찮아질까.

끝을 알 수 없는 이 지루한 싸움에서, 포기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이도, 남편도.


문득 월요일 낮에 아이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외할머니, 엄마, 너는 유전적으로 쉽게 우울해지는 기질을 타고 태어났어. 그러니 남들보다 자극에 예민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쉬워. 하지만 대신에 이 우울에 지지 않겠다, 나는 꼭 살아나겠다는 기질도 함께 물려받았어. 그래서 외할머니도, 엄마도, 그렇게 괴롭고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럴 수 있어."


그래.

3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지지 않으려고 끝까지 발버둥 치는 그 기질.

그것은 번아웃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나를 살려주기도 했다.

그러니 그것은 분명 딸아이도 살려낼 것이다.

목을 조르는 와중에도 119에 전화를 걸게 만들었던 것처럼, 그 기질이 아이를 죽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그런 믿음을 붙잡고 나는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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