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제출하러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갔다.
딸아이는 화요일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다.
모든 제도를 총 동원하면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생긴다.
그동안 아이가 좋아질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알지 못한다.
딸아이가 쉬기 위해 필요한 신청서를 제출하며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
고생을 하는 건가?
내가?
나는 잘 모르겠다.
특별히 힘들지도, 슬프지도 않고 다만 조금 기력이 모자랄 뿐이다.
서류를 제출하고 돌아오는데 왠지 아이의 중1시절은 이걸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월 중순에 아이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공황장애까지 시작되고 있는 마당에 두 달은 아이를 치료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오늘따라 유독 날씨가 선선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노랗게 물든 벚나무 잎들이 길 위를 데구루루 구른다.
벚꽃이 피던 계절에 시작된 아픔은, 벚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이 계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잎을 모조리 떨어뜨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로 겨울을 보내고 나면 보란 듯이 예쁜 꽃을 피우는 벚나무처럼 내년 봄에는 내 아이도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을 만나 함께 시장에 갔다.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들까지 장바구니에 담았더니 한가득이다.
아들과 함께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화요일 새벽, 죽음이 우리 근처를 서성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수다를 듣고, 장을 보고, 저녁밥을 준비하는 평범한 일상은 계속 이어져간다.
저녁 6시.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진다.
열린 창문을 들어온 공기에서 가을의 냄새가 난다.
매미소리를 대신해 들려오는 풀벌레들의 노래가 2025년의 마지막 계절이 곧 다가올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올여름엔 매미소리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네...'
매일매일 들이닥치는 힘듦을 헤쳐나가느라 그토록 좋아하던 한여름의 뭉게구름 한 번 보지 못했다.
눈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나에게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거나 매미소리에 귀 기울일 힘이 없었다.
그런 내가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
하루하루 노랗게 변해가는 벚나무의 모습과 미세하게 변해가는 산의 빛깔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유가 생긴 내 마음에, 계절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