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휴대폰을 바꿨다.
기존에 쓰던 폰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터리 성능도 떨어지고 폰의 뒤판도 떨어지고 카메라도 떨어졌다.
케이스를 벗기면 폰의 뒤판과 카메라가 함께 벗겨지곤 했다.
그래도 나는 폰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배터리 교체할 때 케이스 붙여달라고 하지, 뭐."
하지만 남편은 그 상황을 참지 못했다.
계속 자급제 폰 사고 알뜰요금제로 갈아타라고 노래를 불렀다.
내가 자꾸 거절했더니 나중에는 삐짐과 짜증 사이 어디쯤인가에 있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남편을 위해 폰을 바꿨다.
'역시 아버님 아들답네.'
남을 위하고 남에게 신경을 쓰긴 하지만 남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본인이 생각할 때 좋아 보이는 방식으로 신경 써 주는 건 부자가 똑같다.
DNA.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이름이나 생년월일이 아니라 DNA다.
딸은 엄마 팔자 닮아간다지만 딸이 닮은 건 엄마의 팔자가 아니라 엄마의 유전자다.
유전자가 비슷하면 비슷한 선택을 할 확률이 높고 비슷한 선택이 반복되면 삶의 모습이 비슷해질 확률도 올라간다.
처음 시댁에 인사하러 갔을 때 남편과 똑같이 생긴 아버님을 보고 놀랐다.
시할아버지댁에 갔을 때는 3대가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에 경악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다.
시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아버님과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들을 낳고 처음 아들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내가 시아버지를 낳은 줄 알았다.
먹성이 좋아 점점 포동포동 해진 아들은 점점 작은할아버지를 닮아갔다.
나는 도장으로 찍었다고 할 만큼 친정아빠를 많이 닮았다.
딸아이도 어린 시절 내내 엄마를 도장으로 찍은 것같다는 말을 들으며 지냈다.
물론 자라면서 조금씩 아빠를 닮아가고 있지만 넓고 둥그렇게 생긴 이마는 친정아빠-나-딸아이에게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눈빛.
조금씩 모습이 변해가는 와중에도 눈빛은 여전히 나를 닮아있다.
특히 사람을 바라보는 그 특유의 방식은 나를 그대로 복사해 놓은 것 같다.
"누나가 나 쳐다보고 있는 것 같던데?"
딸아이의 담임을 맡았던 친한 동생이 말했다.
공개수업에 갔을 땐 딸아이의 친구가
"야, 저기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 있어."
라고 말하기도 했다.
치매에 걸린 친정아빠는 돌아가실 때까지 외손녀를 자신의 막내딸(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기한 건 성격이나 취향의 유전이다.
어렸을 때 나는 포도 알갱이보단 포도 껍질에서 나오는 즙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늘 알갱이는 버리고 껍질의 즙만 빨아먹었다.
포도를 먹을 때마다 내가 뱉은 포도 알갱이가 접시 위에 개구리알처럼 가득 쌓여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나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릇에 가득 담긴 개구리알처럼 보이는 포도알갱이를 발견했다.
딸아이가 포도 껍질의 즙을 빨아먹고 남긴 흔적이었다.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스스로 한 행동일 텐데 이런 것까지 유전된다고?
"나는 내 이름이 너무 여자 같아서 싫어. 중성적이거나 차라리 남자 이름이 좋아."
자기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딸아이가 한 말은 내가 어렸을 때 친정엄마에게 했던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아있다.
성격의 절반 이상은 유전에 의해 정해짐을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 속에서 그 사실을 맞닥뜨리게 되면 꽤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모든 유전자가 그대로 전해지는 건 아니다.
내 유전자를 복제한 건 아니니까.
우울증에 취약한 유전자는 친정엄마-나-딸아이로 이어졌고 adhd 유전자는 친정엄마-나-아들로 이어졌다.
"어... 방금 들고 왔는데... 어디서 잃어버렸지..."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아들, 아들이 잃어버린 카드가 아닌 전혀 엉뚱한 카드를 분실신고 해버린 나를 보며
"덤 앤 더머네."
라고 한 마디 툭 내뱉고 사라지는 딸아이의 모습도 분명 그 출처는 나다.
한때 굉장히 미워했던 친정아빠지만 요즘은 아빠가 물려준 유전자 덕에 내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울해지기 쉬운 기질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았지만 아빠에게서 전해진 둔하고 느긋한 성향이 딸아이로 인해 생겨난 고통을 감소시켜 준다.
아빠가 지니고 있던 배우고 탐색하기 좋아하는 성향은 나에게 이어져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고 빨리 대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엄마에게서 받은 책임감, 지지 않겠다는 오기 그리고 아빠에게서 온 무던함과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살리고 아이를 지킨다.
곧 추석이 다가온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단 한 번도 납골당에 가지 않았다.
아빠를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용서를 넘어 감사의 단계까지 나아갔으니, 다가오는 추석에는 편지 한 통과 꽃 한 송이 들고 아빠를 찾아가야겠다.
아빠, 이젠 다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아이를 지킬 수 있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