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에게 딸아이를 맡겨 놓고 미용실에 갔다.
14살.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나이지만 나는 아이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는 학교 상담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날이었다.
친정엄마가 오전에는 시간이 안 된다고 하길래 1시간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서 이를 혼자 두고 학교에 다녀왔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우울증이 밀려왔던지 소금을 잔뜩 탄 물을 마시고는 토했다고 했다.
'새로운 형태의 자해네.'
자해를 할 만한 수단이 다 사라지고 수시로 소매를 걷어 확인을 하니 결국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낸 걸까.
어쨌든 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미용실에 가있는 동안 친정엄마는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건 다 해준 것 같았다.
"너, 자꾸 할머니 삥 뜯을래?"
"놔둬라. 오랜만에 손녀하고 데이트해서 좋은데, 뭐. 그지?
엄마는 그저 무한히 사랑할 뿐이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왠지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무한한 사랑, 무한한 희생.
나는 엄마가 손자, 손녀를 소홀하게 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친정엄마의 곁에서 나는 애정과 모성애가 모자란 엄마가 된다.
나는 상담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xx 씨(나)는 본인이 가진 에너지의 150%를 써서 엄마 노릇을 해요. 그래서 남들이 볼 때는 굉장히 애쓰는, 대단한 엄마예요. 하지만 xx 씨의 어머니는 에너지의 200%를 쓰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xx 씨의 어머니나 어머니가 그러는 걸 보고 자란 xx 씨에게는 늘 xx 씨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래.
내가 못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너무 잘하는 거지.
나는 나대로 하면 돼.
"애가 아파 보이더라."
집으로 돌아가기 전, 친정엄마가 말했다.
안 그래도 오늘따라 딸아이가 기운이 없어 보여서 혹시 우울증이 심해진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아이가 아파서 그렇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린다.
"너 오늘 왠지 안 좋아 보이는데 우울해서 그래? 아니면 아파서?"
"아파서 그런 거 같은데? 지금 머리 아프거든."
친정엄마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아채는 걸까.
엄마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예민성은 양날의 검이 된다.
적절히 잘 쓰면 타인을 살리지만 예민함이 지나치면 본인을 죽인다.
어제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며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녀서 그런지 기운이 없다.
그래도 엄마가 로봇청소기를 돌려준 덕분에 따로 방청소는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집에만 오면, 자식 때문에 고생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집안일이란 집안일은 다 해주고 가려한다.
안 그래도 이곳저곳 아픈 사람이 자기 몸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엄마 노릇하기 바쁘다.
"엄마, 다른 건 하나도 안 해줘도 되니까 손녀 봐주러 왔을 때 로봇청소기만 돌려줘."
몇 번이나 계속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야 그 부탁을 들어준다.
피곤에 절어 축 늘어진 목소리로 딸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했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거의 다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나는 다시 한번 더 선생님께 2026학년도 딸아이의 반배정에 대해 부탁의 말을 건넨다.
반배정은 교사의 고유 권한임을 잘 알지만 상황이 이런지라 실례를 무릅쓰고 내 의사를 전달한다.
"안 그래도 어제 회의하면서 상담선생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느 정도의 의견은 반영이 될 것이다.
딸아이의 학업 중단 숙려제는 회의에서 정식으로 통과되었다.
원래는 2주를 먼저 신청하고 그 이후에 아이의 상태에 따라 2주를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딸아이의 경우는 처음부터 4주를 다 신청하는 걸로 하신단다.
아이의 상태를 봤을 때 2주 정도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겠지.
학업 중단 숙려제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상담도,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다는 상황을 고려해서 상담과 체험 활동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을 갖춘 기관과 연결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항상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좋은 방향을 고민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유독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이 든다.
딸아이의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자살 시도, 경찰 출동, 형태를 바꾼 자해...
이 상황에서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이제 꽤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딛고 선 바닥은 흔들린다.
하지만 괜찮을 거다.
나를 지탱해 주는 수많은 기둥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