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직 이야기3.

사과 하면 큰일나는 병에 걸린 사람

by 늘날생각해

미안합니다.

사과를 하면 큰일나는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i가 말했다.

본인이 잘못을 해놓고도 사과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아침부터 씩씩거렸다.


그로부터 20분 뒤.

나는 사과를 받았다.

x선배에게서.


키가 큰 선배는 검정색 롱코트를 입고 있어

오늘 따라 더 길어보였다.

앉아 있던 나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인사 하려고 일어났지만 그래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나는 앉은 키도, 선 키도 작기 때문이다.


멀리서 걸어오면서부터

선배는 손을 쭉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자세를 하고 있었고

동공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선배의 손은 나의 손으로 향했고 반짝이던 동공은

...둘, 셋. 큐!

누가 신호라도 준 것처럼 아련하게 변하더니

동공 아래로 눈물이 차올랐다.

후두두둑. 소나기처럼 눈물이 떨어지는 데까지

10초나 걸렸을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와. 진짜 빨리 운다.'




선배의 눈은

수평선 위에 떠오르는 태양 같았다.


아래쪽 아이라인을 따라 눈물이 차올랐고

그 위에 촉촉하게 젖은 동공이 있었기에.

... 왜 이런 식으로 표현하느냐 하면

내가 선배의 눈을 실시간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선배는 말을 꺼내면 눈물이 나올까 봐

목소리를 다듬고 있는 듯했고

나는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아

아... 아이고... 아유...

손사래를 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다 선배가 눈물을 닭똥처럼 툭툭 떨구며 얘기를 꺼내자

나도 염소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화답했다.

"어머. 나 왜 이래. 어머어머. 웃겨 증말."


또 너스레를 떨며 나는 눈물을 닦았다.

그 상황이 너무 시트콤 같아서

울면서 웃었다.


선배는 사과를 했다.

"진짜 미안해.

나는 회사 상황이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그리고 나는 맨날 회사 소식 맨 늦게 알거든.

다들 아는 줄 알고.

어휴. 내가 이래. 미안해."


울면서 웃던 나는 순간 울컥해

웃음을 거두고 울기 만했다.

그래도, "아이. 아니에요. 별 말씀을요."하고

거짓말까지는 못하겠고, 침착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얘기 들었어요. 미안해 하신다고.

근데 사실 저, 그렇게까지 저거 하지 않았거든요.

같이 있던 사람들이 보기에 좀 저거해 보여서 그랬나 봐요.

너무 저거해 하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거, 한 게 뭔지. 선배는 알아들었을까.

아무튼 나는 웃으며 선배와 눈맞춤으로 대화를 했으니

나의 마음이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아. 마지막에 선배가 밥 먹자는 얘기도 했으니

그걸로 게임 끝.




그리하여 나는

사흘 내내 사과를 받았다.

가만히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다는 게 죄인지,

해고 소식을 우연히 들은 게 죄인지,

해고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 게 죄인지,

잘 모르겠지만

모두들 나에게 사과를 했고

나는 깔끔하게 받아먹었다.


내일은 아무도 나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사과 할 일이 생기는 것도 난감하지만

누가 나에게 사과를 하는 일도 괴롭다.

태어나 이렇게 많이 사과를 받아본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해고를 당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받다니.


어쩌면, 힘내요- 라는 앞뒤 안 맞는 위로보다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이런 식의 위로가 더 나은 듯도 하다.

적어도 진정성 면에서는 말이다.


아무튼, 당신들의 마음은 잘 알았으니

더이상 내게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난 늘 그랬듯

없는 듯 없는 듯 있다가

먼지털개에 휩쓸린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으니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실직 이야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