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 만한 날들

작은 것들로 채워지는 봄

by 늘날생각해

그 작고 여리고 꼬물꼬물한 것이

봄볕의 어리광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빼꼼 내비치는 모습은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제철 풍경이다.


산책하러 들른 공원의 꽃과 나무 앞에는

작은 푯말이 흔하게 꽂혀 있다.

나처럼 무지하게

'이름 모를 꽃과 나무'라고 부를까 걱정한 누군가가

푯말에 이름을 또렷하게 적어 놓았다.


수분기 없이 거칠어진 할머니 손등 같던 나무는

화살나무였고

아무 특색 없어 꿔다놓은 나뭇가지 같던 나무는

찔레나무였다.

벚꽃과 비슷하지만

꽃잎 끝이 둥글고 뽀얀 꽃은

매화였고

산수유라고 철썩 같이 믿었던 꽃은

생강나무의 꽃이었다.


푯말을 보지 않고도

자신있게 댈 수 있는 꽃나무도 있었다.

은행나무와 목련.


은행나무의 은행잎은

이걸 은행잎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아기 손톱처럼 작았다.

겨우 초록색을 띠고 있는 것만으로

나 은행잎이오-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양지에서 자라 특혜를 누린 목련은

이미 탐스러운 꽃송이로 자랐지만

음지에서 자라 철 모르던 목련은

아직 봉오리 상태다.

꽃잎을 틔우지 못한 목련의 눈은

계절 바뀐 지 모른 채 솜털로 덮여 있다.


손톱만한 은행잎과

솜털로 에워싸인 목련 눈은

작고 여리고 꼬물꼬물했다.

손 갈 일 없이 다 커버린 은행잎과 목련꽃도 아름답지만

봄이니까,

봄이라서,

작고 여리고 꼬물꼬물한 것이 좋다.


손 대면 톡 하고 부러질까

어쩔 줄 몰라하며 귀하게 만지는 느낌도 좋고

간지러운 행색으로 바람에 작게 흔들리는 모습도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을 떠올린다.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그는 소소하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런 것들이라고 소개했다.


작은 것은 힘이 세다.

기대할 게 없어 느닷없이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흔해서 발길을 돌리기 쉽지만

흔해서 눈길이 자꾸 머문다.

그런 이유로 소소하고 작은 것이 좋다.

그런 것들로 하나하나 채워지는 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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