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Klang에서 드러나는 하이데거적인 시간의 인식
Stockhausen-Stiftung für Musik, Kürten, Germany
*논문 형식으로 1차 작성된 자료에 일부 주석을 붙여 업로드합니다.
본고는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2007)의 마지막 작품인 전자음악 Klang – die 24 Stunden des Tages (이하 ‘Klang’)에서 드러나는 슈톡하우젠의 시간에 대한 인식을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적인 시간과 현존재(Dasein) 개념에 접목하여 해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슈톡하우젠은 칸트적 시간 개념, 즉 인간이 자아를 벗어나 현실을 인식함으로써 발생하는 시간은 유한한 인간에 의해 인식되기 때문에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슈톡하우젠은 칸트적 시간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 ‘유한한 거리를 두고 마주본 두 거울의 상(Image)에서 무한히 반사되는 시간’의 개념을 제안하였으며 이를 또다른 전자음악 작품인 Tierkreis와 Sirius, 오페라 Licht에 반영하였다.
한편, Parsons에 따르면 이러한 슈톡하우젠의 시간에 대한 순환적 인식은 Klang에서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이해의 지평(The horizon for the understanding of being)’ 개념으로 전복된다. 또한 Kohl에 따르면 슈톡하우젠은 기존의 무한한 순환적 시간의 개념에서 벗어나 현존재의 필멸성에 주목하였으며 Klang을 구성하는 21개 작품의 음악적 내용은 이를 투영할 수 있다고 보았다. 본 연구에서는 Klang의 21개 작품을 미시적으로 분석하여 음악적인 기능에 따라 각각 Hours 1-4, Hours 5-12, Hours 13(Cosmic Pulses), Hours 14-21로 나눈 것을 바탕으로 각 음악적 기법이 미시적으로 하이데거적 시간과 어떻게 미학적으로 연결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21개 작품이 거시적으로 어떻게 구성・배치되어 슈톡하우젠의 시간 개념을 표현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슈톡하우젠 본인의 작곡 노트를 기반으로 한 Parsons의 분류에 따르면, Hours 1-4에서는 선형적으로 정렬된 유한하고 연속적인 시간이 제시된다. Hours 1(Himmelfahrt, 승천)과 Hours 2(Freude, 환희)는 2005년에 밀라노 대성당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표현한다. Hours 3(Natürliche Dauern, 자연의 지속)부터는 작품 내 24개의 조각(segment)이 비선형적으로 분리되고 Hours 4 (Himmels-Tür, 하늘의 문)에서 마침내 무한한 시간 개념에 대한 종말을 고(告)한다. Hours 4에서 타악기 연주자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다가 어느 순간 문이 열리고, 연주자는 그 문 뒤편으로 사라진다. 연주자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문 밖에서 사이렌 소리, 쇠 소리 등이 전자음악적으로 결합하여 들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이것이 순환하는 시간(Cycle)에 대한 개념에서 돌아옴이 없는 시간적 개념을 표현한 것이라고 Parsons는 설명한다.
Hours 3-4의 비선형성은 슈톡하우젠이 Klang의 21개의 작품에 색깔을 하나씩 대입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슈톡하우젠은 HKS Color System에 따라 각 작품에 색을 대응시켰으며, Hour 1이 HKS 44번 정도의 색을 가진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Hour 10에서 69에 도달했다가, Hour 11에서는 HKS 2번으로 돌아가 마지막 Hour 21에서는 다시 Hour 31로까지 돌아간다. 그러나 Hour 1에서 Hour 22까지 HKS Color가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것과 달리(Hour 10에서 Hour 11로 넘어갈 때는 Cycle을 한 바퀴 돈 것으로 가정하면 숫자는 순방향으로 진행한다), Hour 3에서 Hour 4로 향할 때는 HKS Color가 HKS 66에서 HKS 45로 역행한다.
Hours 1-2와 Hours 3-4에서 각각 드러나는 선형성과 비선형성의 대비는 시계로 측정 가능한 물리적이고 연속적인 시간인 일상적 시간(Vulgäre Zeit)에서 현존재가 자신의 실존적 가능성(Possibilität)를 인지하는 본래적 시간(Eigentliche Zeitlichkeit)으로 시간에 대한 인식이 전환됨을 나타낸다. 하이데거는 시간 경험을 상기한 두 가지 시간으로 나누었는데, Hours 1-2와 같이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순간들의 연속적 흐름”인 일상적 시간 혹은 객관적 시간(Vulgäre Zeit)은 비본질적이다. 한편, Hours 3-4와 같이 흐르는 본래적 시간은 원환적 구조를 가지며 과거-현재-미래가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이데거는 특히 미래가 시간 구성의 핵심 요소임을 주장하며 “시간은 삼중적이다: 미래로서 이미 있었던 것을 현재 속에 함께 가져온다”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서, 미래는 현존재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현존재에 의해 지향되며 과거와 현재는 미래에 의해 구성되는 한편, 과거는 현재를 통해 더 잘 이해되고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한편, Parsons는 Hour 4(Himmels-Tür)에서 ‘천국의 문’ 밖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타악기 연주자가 무한한 시간 개념에 대한 종말을 표현한다고 해석하면서도 이것을 하이데거의 철학과 면밀하게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하이데거에게 시간성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하이데거는 “죽음은 시간의 수평적 연속성을 단절시키며,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앞서서 체험함으로써 본래적 시간성을 이해한다”고 표현하였다. 천국의 문은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 어두운 문 밖으로 들어가는 인간은 죽음을 체험한다. 그 뒤에서 들리는 사이렌, 징, 하이햇 소리 등은 타악기 주자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발생하던 나무 소리와는 대비되어 무한한 가능성을 표상한다. 그리고 관객석에서 나온 어린 소녀가 그 보이지 않는 가능성이 들리는 천국의 문 속으로 나아간다. 소녀는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Sein-zum-Tode)’이며, 이 존재는 죽음으로 빚어지는 유한성의 인식으로 말미암아 최종적으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완성한다.
슈톡하우젠은 Hours 6-12를 몇 개의 부분군(subgroup)으로 나눈 후, 각 부분군의 (음렬과 같은) 음악적 소재를 Hour 5(Harmonien)에서 모두 차용하여 작곡하였다. Parsons는 이 Hour 5에서 12음 기법 등 매우 전통적인 작곡기법들이 사용되었다고 분석했다. Kohl에 따르면 그는 Hour 1에서 사용된 24음 음렬(24-note tone row)를 역행(Inversion)시킨 후 첫 D♭음을 다시 붙임으로서 순환하는 25음 음렬을 만들고, 이를 3, 4, 5, 6, 7개 씩 분절하여 5개의 부분군을 만들었다. 이 부분군은 Hours 6-12에서 제각기 다른 순서로 다시 배열되어 연주된다. 한편 슈톡하우젠은 각 음렬 부분군이 연속적으로 나열되다가, 마지막에는 이들이 매우 빠르게 반복되어 마치 하나의 ‘진동하는 화음(vibrating chord)’처럼 들리게 하였다.
Hour 5는 Hours 6-12에게 있어 물리적이면서도 하이데거적인 과거, 즉 ‘던져진 상태(Gewesenheit)’이다. 하이데거에게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사건이 아닌 현재의 현존재를 존재하게 하고 형성하는 기반이며, 존재를 제한하면서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Hours 6-12는 Hour 5에서 형성되어 ‘던져진’ 음렬만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Hours 6-12의 작곡 과정에 있어서 음렬은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며 주어진 음렬을 기초로 음악 전체가 형성된다. 즉, Hour 5는 Hours 6-12의 과거로서 이들을 존재하게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한편, 진동하는 화음은 슈톡하우젠이 이해한 하이데거적 지속(die Dauer)을 표현한다. 슈톡하우젠은 지속을 ‘인식 가능한 시간 단위의 인스턴시에이션*(The perceptible instantiation of units of time)’으로 보았으며, 사람의 귀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속이 빠르게 움직임으로써 음고(pitch)들이 합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뉴턴적인 시간 개념,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상적 시간성(Vulgäre Zeitlichkeit)과는 대조되며 현존재가 세계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한계 혹은 유한성으로 빚어지는 본래적 시간성(Eigentliche Zeitlichkeit)이다. 다시 말해 청자는 구분할 수 있는 다른 음고들이 점차 짧은 지속을 갖다가 마침내 합성되는 것을 체험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인식 한계를 실존적으로 경험하고 이 실존적 시간성으로 인해 지속이 인식되며 결정된다는 것이다. 던져진 과거에서 처음 경험되는 지속은 이후 시간(Hours 6-12)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하이데거적인 (삶의) 의미를 구성한다.
*인스턴시에이션(Instantiation): 주조(鑄造) 공법에서 하나의 거푸집에 녹인 쇳물을 부어 수백 개의 주물(鑄物)을 만들 듯이, 객체(Class)의 구조를 정의한 후 이에 따라 많은 인스턴스를 생성하는 것.
Hours 13(Cosmic Pulses)은 24개의 전자음악적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각기 다른 템포와 음고로 움직인다. 슈톡하우젠은 Hours 14-21로부터 각각 세 개씩 음악적 레이어를 추출하였는데, 이들은 Hours 21에서 레이어 3, 2, 1, Hours 20에서는 레이어 6, 5, 4...에 대응되어 Hours 13에서 시간 역순으로 구성된다. 가장 먼 미래의 사건인 Hour 21(Paradise)에서 시작하여 시간 역순으로 Hour 13까지 수렴하는 진행은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하이데거적인 시각을 투영한다. 현존재는 미래(Zukunft)의 ‘아직-도달하지-못한 가능성(noch nicht erreichte Möglichkeit)’로부터 현재(Gegenwart)를 구성하며 Hours 14-21은 그 실존적 기준이 존재하는 시간이다. 즉, Parsons가 Hour 13을 융합된 시공간의 집합체라고 표현했듯이, 이는 양방향에서 접근하는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현재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Hours 22-24의 부재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슈톡하우젠 본인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을 단정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앞에서 살펴본 Hour 21까지의 구성과 하이데거적 시간관을 접목하면 그 의미를 예상할 수 있다. Parsons는 슈톡하우젠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떨어졌다고 표현했으나, Hours 1에서 21까지 과거-현재-미래의 삼중 구조가 완성되고 닫혀있기 때문에(Cosmic Pulse의 레이어가 Hour 21에서 시작) 비어있는 Hour 22-24는 그 유한한 시간성 너머에 있는 죽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천국(Paradise) 밖에 있는 죽음으로써, 하이데거적인 현존재의 모든 가능성은 완성된다.
참고문헌
[1] Heidegger, Martin, Sein und Zeit (Erste Hälfte), In: Jahrbuch für Philosophie und phänomenologische Forschung 8, 1927.
[2] Kohl, Jerome, “Harmonies and the Path from Beauty to Awakening: Hours 5 to 12 of Stockhausen’s Klang”, Perspectives of new Music Vol. 50, No. 1-2.
[3] Kohl, Jerome, Karlheinz Stockhausen: Zeitmaße, New York: Routledge, 2017.
[4] Kohl, Jerome, Schönheit/Beleza, para clarinete baixo, flauta e trompete (2006), 6a hora de Klang, as 24 horas do dia. Temporada Gulbenkian de Música 2009-2010, 2009.
[5] Ostwald, Wilhelm, Die Farbenfibel: mit 192 Farben (in German) (3rd edition), Leipzig: B. G. Teubner.
[6] Parsons, Ian, “Beyond The Horizon: The Depiction of Time in Karlheinz Stockhausen’s Klang”, Tempo 75 (295) 6-16,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0.
[7] Stockhausen, Karlheinz, “Die Sieben Tage der Woche”, Texte zur Musik Band 6 1977-1984, Cologne: DuMont Buchverlag, 1989.
[8] Stockhausen, Karlheinz, “...How Time Pasees...”, transcrbied by Cornelius Cardew, Die Reihe, 1959.
[9] Stockhausen, Karlheinz, Klang, die 24 Stunden des Tages: Einundzwanzigste Stunde, Paradies, für Flöte und Elektronische Music, 2007, Werk Nr. 101, (in German) Kürten: Stockhausen-Verlag.
[10] Stockhausen, Karlheinz, Klang, die 24 Stunden des Tages: Vierte Stunde, Himmels-Tür, für einen Schlagzeuger und ein kleines Mädchen, 2005, Werk Nr. 84, (in German) Kürten: Stockhausen-Verlag.
[11] Stockhausen, Karlheinz, Stockhausen-Courses Kuerten 2006: Composition Course on Klang/Sound, the 24 Hours of the Day: First Hour: ASCENSION for Organ or Synthesizer, Soprano and Tenor, 2004/05, Work No. 81, Kürten: Stockhausen-Verlag, 2006, pp. 3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