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곡(東方新曲): Project 9. 작곡가 손일훈 "질문과 명상"
현대음악이라 하면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솔직해지자. 아마 많은 이들이 난해하고, 현학적이라 여길 것이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현대음악에 대한 처우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현대음악이 등장하게 된 음악사적・미학적 배경을 이해하고 연주하면서도, 분명 즐겨 찾아 듣지는 않는 실정이다. 현대음악의 열렬한 지지자인 필자가 현대음악이 직면한 이런 부당한 처우를 마냥 무릅쓰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필자는 현대음악을 소개하고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현대음악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흥미로운 세계다”라고 나름의 광고를 내건다. 하나 역설적으로 새로운 글을 기고할 때마다 현대음악의 내면화된 어법이 고전음악이나 대중음악의 어법에 비해 청중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거듭 체감한다. 고독한 현대음악의 홍보대사는 그렇게 새로운 기삿거리에 대한 기대와, 현대음악의 벽을 다시금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9명의 한국 작곡가를 소개하는 현대음악 프로젝트 <동방신곡(東方新曲)>의 최종장인 ‘손일훈 – 질문과 명상’편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손일훈의 리사이틀은 <Magnanimity>(이성, 2017)로 막을 올렸다. 두 세 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짤막한 모티프들이 목관, 호른, 현악, 피아노에서 동시에 제시되는 한편, 악기마다 서로 다른 조로 움직이며 복조성처럼 들린다. 특히 이 모티프는 대부분 장7도와 증4도의 음 간격으로 이루어져 있어 전통적인 화성적 불안-해결을 통한 음악적 진행이 느껴지지 않고, 마치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듯이 모호한 얼버무림을 반복하는 것 같다. 이 짧은 모티프는 곡이 진행될수록 복잡해지고 길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일순간 두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프와 대조되는 길고 연속적인 모티프가 드문드문 제시되다가, 곡의 끝에 다다러서 모든 악기들이 일제히 모이며 지금까지 제시된 음악적 아이디어들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문제를 차분하게 해결해야 할 때는 가능한 옵션을 모두 떠올리고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그중에서 가장 나은 방향을 선택하게 되죠. 그렇게 한 순간,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면,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갑자기 두뇌 회전이 빨라지게 됩니다. 그 후에는 확신에 가득 찬 생각이 우리를 순식간에 행동하게 만드는 거죠." - 작곡가 손일훈
정리되지 않은 짧은 몇 도막의 옵션들이 드문드문 떠오르다가, 어느 순간 그 모든 조각들이 짜맞춰지듯 질주하는 선율! 음악가의 기민한 ‘음악적 영감’이 발현되는 아름다운 창조의 순간이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이번에 소개된 손일훈의 작품은 하나같이 그 의도와 기법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청자도 작곡가의 친절한 설명을 되뇌이며 진행되는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그 표현에 십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이따금 창의적이고 짜임새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실패한 예술가들이 ‘의도된 것’이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는 한편, 손일훈의 설명은 더없이 명확하여 공혈에 꼭 맞는 퍼즐 조각을 찾은 듯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다음은 손일훈 작곡가의 작품이 아니라 그의 스승인 피터 아드리안즈(Peter Adriaansz)의 작품이었다. 프로그램 노트에 쓰인 손일훈 작곡가의 코멘트를 보면, 사제 지간이지만 손일훈 작곡가는 피터 아드리안즈와 음악적인 지향점이 많이 달랐는데, 손일훈 작곡가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음악관을 가진 한편 아드리안즈는 형식과 수학적 논리를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손일훈 작곡가는 아드리안즈와 함께 작곡 공부를 하면서 상반된 두 스타일을 절충하여 새로운 어법을 구사할 수 있었고, 이것이 <Meditation I-III>(명상 I-III, 2019-2023)이나 Musical Game Series을 작곡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소개된 아드리안즈의 작품은 <9부터 99까지>(2003/2005)로, 상술했듯 수학적 논리를 중요시 여겼던 작곡가의 성향이 반영되어 ‘파스칼의 삼각형’의 원리가 작품에 적용되었다고 한다. ‘파스칼의 삼각형’이라는 제시어를 듣자마자 필자는 “첫 음을 1로 둔 후 단계가 올라가며 제시되는 수열을 음 간격으로 표현하겠구나”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파스칼의 삼각형이 무엇인지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는 무작위적인 음의 나열처럼 들릴 수 있겠다는 걱정도 섞여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예상한 대로 피아니스트는 파스칼 삼각형에 따라 만들어지는 수열을 음 간격으로 표현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완성된 작품은 수학적 구조를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음악적으로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 차 있었다. 아드리안즈는 9진법을 채택하여 처음 ‘미’ 음에서 한 옥타브 위 ‘미’까지 음을 1부터 8까지 대응시킨 후, 9는 0에 대응시켜 아무 음도 연주하지 않도록 하였다. 점묘적으로 제시되는 음의 나열은, 규칙에 따라 처음에는 씨앗이 움트듯 작은 음 간격으로 이루어졌다가 곡이 진행될수록 음 사이를 무작위로 점프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다시 작은 음 간격으로 수렴하다 결국 ‘미’ 음으로 회귀하는 대칭성이 작품에 균형감을 주었다. 또한 수열이 숫자 ‘9’에 도달해 음이 휴지되는 부분은 8분음표의 나열이 될 수도 있었던 작품에 리듬감을 주었다. 작곡가는 피아노가 파스칼의 삼각형을 완성하는 동안 다른 악기들이 특정 박자에 삼각형의 수열을 제시하여 음향을 두텁게 했는데, 수학적인 규칙으로 짜여진 음렬이 대위적으로 결합하면서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러한 수학적 규칙의 아름다움은 손일훈 작곡가의 <스무고개>에서 더욱 독창적으로 재활용되었다. 마이크를 잡은 손일훈 작곡가는 “두 연주자가 피아노 위에서 어떤 규칙으로 스무고개를 할 것이다. 그 규칙을 맞춰보라”는 설명만을 남겼다. 이후 시작된 연주에서,한 명의 연주자가 임의의 두 음을 몇 번 반복적으로 누르다 멈추면, 나머지 한 명의 연주자는 '미'음 하나 혹은 B♭7화음을 연주하였다. "스무고개라는 이름에 비추었을 때 한 쪽이 질문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Yes or No’를 외칠테니, ‘미’음이 ‘Yes’이고 B♭7화음이 ‘No’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질문을 어떻게 제시하는 것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고, 그렇게 스무 개의 질문은 지나갔다. 연주가 끝난 후 손일훈 작곡가는 규칙을 알려주면서 새로운 판을 제안했다. 연주가 다시 시작된 그제서야 연주자들의 모든 행동의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고, 관객석에서는 옅은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규칙을 깨달은 후 공연은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 긴장되고 흥미로웠다.
<이성>의 아이디어와 <9부터 99까지>의 수학적 규칙, 그리고 손일훈 작곡가의 전작인 “Musical Game Series”에서 즐겨 사용된 문답 형식까지. <명상 I-III>과 금번에 초연된 <끝없는 질문들>(2024)은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고 있었다. 전통적 진행을 따르지 않는 <명상>과 <끝없는 질문들>의 화성은 일정한 수학적 규칙에 따라 배열되며, 으뜸화음으로 갈무리 지어지지 않고 무한히 순환하게 된다. 그리고 <끝없는 질문들>에서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성우의 목소리를 통해 “나무들은 왜 그들의 찬란함을 숨기지?”와 같이 다소 황당한 질문이 제시되고 악기가 나름의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결론지어지지 않는 음악, 대답하기 어려운 황당한 질문을 곱씹으면서 청자는 자연스럽게 사유하게 되고, 마침내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며 ‘명상’하게 된다. 이번 리사이틀의 부제가 ‘질문과 대답’이 아닌 ‘질문과 명상’인 이유다. “질문에 정답은 없어요. 가만히 사유하면서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겁니다.” 이것이 손일훈 작곡가의 음악 세계였다.
21세기 ‘음악 예술’의 지향점은 어디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으레 예술이라 하면 충분히 복잡하고 지적으로 고양된 함의를 갖는 작품들을 생각한다. 물론 그런 작품들이 예술적 사유의 단초가 되어 청자로 하여금 지적 쾌감을 주고 나아가 음악 예술 전체를 발전시켜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도리어 많은 사람들을 현대 음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 그 결과 음악의 추상적 언어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배척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일훈 작곡가의 작품은 더욱 특별해보였다. 손일훈 작곡가는 복잡한 구조를 인위적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으며, 단순명료한 규칙으로 작곡했다. 이후는 자연의 수학적인 의지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 한 줄의 짧은 수식이 아름다운 프랙탈을 그려내듯 정교하고 미적으로 완성된 모양을 띄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청자 개개인이 자신과 교감할 것을 주문한다. 무구한 순수와 기쁨으로 그려낸 손일훈의 음악적 유희 끝에는, 그의 마음을 공감하고 미소짓는 ‘나’가 있었다.
음악과 예술과 유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손일훈 작곡가의 작품을 빌려 다시금 외치고 싶다. 현대음악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흥미로운 세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