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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노페디(Gymnopédie)。

by 최창인


Erik Satie - Gnossienne No. 3
Krzysztof Kieślowski - Trois Couleurs: Bleu (1994)





그는 흔히 색마(色馬)나 호색광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검은 방 속 검은 브라운관을 타고 푸른 화면과 붉은 신음이 터져나왔다.

푹 꺼진 검은 소파를 그는 박차고 나왔다.

새벽의 로맨스 영화를 도무지 참을 수 없었던 탓이다.


"하와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 아담도 받아 먹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웠다."


그는 오랜 시간 색정증에 괴로워하는 사람이었다.

나체로 살기에는 하얀 빛과 하얀 거울이 두려워

그는 침대로 무한히 질주하다 측두부를 열세 번 추돌했다.

젊은 날의 푸른 열망을 향한 검붉은 피가 끓었다.

육체의 발산하는 힘은 자기의 무너지기에 충분했다.

그는 알몸으로 느린 춤을 추었다.


"Je suis venu au monde très jeune dans un monde très vieux."

(나는 너무도 늙은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젊게 태어나버렸다.)


보헤미안으로 살기에 남자는 너무도 늙어버렸다.

남자에겐 남근이 없었다

없었던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랑하지 않으면 섹스하지 않아"

"피- 재미없어."

- 그는 어딘가 無言의 언어적 폭력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말 뿐인 사랑 말 뿐인 섹스


그녀의 정강이 뼈가 아름다웠다 좋은 냄새가 났다

나리꽃밭에서 풀을 뜯는 쌍둥이 노루와 같이 새끼 사슴 한 쌍 같은 태고의 젖가슴을 한평생 그리워했다


그렇게 그는 발기부전으로 평생을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죽어버렸다.

혈액의 폭력적 압제에 괴로워하던 음경(陰莖)이 버티고 버티다 그대로 터져버린 것이다.

안과 의사의 진단이었다.


블루블루블루블루...


하얀 카멜 한 개피가 한껏 부풀어 푸른 보름을 향해 솟구친다

남자는 목젖을 탐하듯 담배를 빨았다

도둑이 키스하듯

깊숙이 재빠르게

여름 모기가 지금 그의 허벅지를 탐하는 것도 모른채

숨을 정확히 세 번 밀어 넣고 다시 세 번을 삼킨다


붉은 잉걸불이 타올라 하얀 연기를 최후의 최후까지 훅훅 내뿜더니

서서히 고꾸라졌다

콘크리트 빌딩 속 홍등가의 불이 하나둘 켜진다


발기와 침몰 그리고 몰락


짙은 밤하늘이 옅게 푸르렀다


남자는 고간까지 등반에 성공한 모기를 꾹 눌러 잡는다

그는 도망할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검붉은 피가 톡, 터져나왔다

그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 트리오 보다는 역시 두엣이 낫군

남자가 낮게 읊조렸다.


새벽 4시 하고도 17분이 부족하게


Claude Debussy





- 2025. 06. 27.

당신을 사랑한지 일 년 하고도 며칠.



Erik Satie - Gymnopédie No. 3
石井裕也, 「夜空はいつでも最高密度の青色だ」(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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