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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관종의 DNA

by toki


어렸을 적, 영화 <트루먼쇼>를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진짜인지, 어쩌면 내가 가짜 세상 속의 트루먼이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몇 살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도 뒤뚱거리는 통에 엄마 손을 잡지 않으면 안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이 쯤에

나는 엄마와 함께 우체국 앞을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두리번 대면서 누가 날 쳐다보고 있음을 감지했다.

당연히 영화 <트루먼쇼>를 봤을리 없을 나이였다.


영화를 본 후에서야 그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지만 분명히 누가 날 들여다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름대로 표현한 두려움은 귀여운 외계어 정도로 들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에도 몇 번,

이런식으로 누가 날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행동을 고쳤다.

어쩌면 나도 트루먼일지도 모른다는 0.000000000001%의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던 뜬금없는 어느날, 나는 알았다.

착한 트루먼이 되고 싶은게 아니라 나중에 엄마가 알게 되면 혼날게 무서웠을게 분명하다는걸.

결국 그냥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나는 트루먼을 빙자해 안소심한척, 쿨한 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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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 중 아싸, 아싸 중 인싸

그게 바로 나다.


내성적인데 외향적이고, 리더는 아닌데 누가 하라는건 하기 싫다.

인스타는 비공개로 해놓았지만 인스타 충이다.


아마 내 어딘가에 관종의 DNA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누가 나한테 관심 갖는건 싫다.


트루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감시 당한다는 강한 거부감에 몸부림 치지만 누가 봐줬으면 하는 감정이 그대로 존재한다.


아이러니한 양가 감정 덩어리인 내가

티비 토크쇼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나한테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

나의 가치관과 철학을 바탕으로 또는 그냥 시덥잖은 브이로그 찍듯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에세이를 읽다가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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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지금까지 계속 광고 회사에만 다녔다. 작은 사무실도 운영해 보았고 프리랜서로도 일해 봤다. 광고는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표현해서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관건인데 결과물을 보면 쉬워 보여도 막상 과정은 늘 어렵고 막막했다. 게다가 나는 성격상 일을 맡으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 종일 매달려 노심초사하는 편이다. 당연히 다른 개인적인 일엔 소홀할 수밖에 없고 저녁에 초주검이 되어 귀가하면 날카로워진 신경을 다스리느라 혼자라도 술을 마시고 잠드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는 ‘그만하면 충분히 벌었으니 이제 그만하라’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업계는 늘 위기였고 다니는 회사마다 사정이 안 좋았다. 갑을 관계가 분명한 업계의 속성 때문에 불합리한 일도 많았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하는 스트레스, 촉박한 스케줄, 원래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 결과물 등 괴로운 일이 많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점차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힘든 건 그동안의 공력이 있어 그런대로 참을 만했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들은 켜켜이 쌓여 그대로 마음 속 상처가 되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이대로 계속 회사를 다니면 계속 불행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아내에게 제일 먼저 말했더니 “당신이 오죽했으면 이러겠어”라며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자신도 속으로는 무척 걱정이 되겠지만 나한테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 아침엔 나의 뒷모습이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고도 했다.
퇴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법이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손에 쥔 공을 놓아야 더 큰 공을 잡을 수 있다’는 말도 떠올렸다.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 편성준
1회 [내가 회사를 그만 두는 이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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