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멍과 유령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한 친구들이 있다. 말. 멍. 유령.
말은 얼굴이 길어서, 멍은 얼굴에 점이 있어서 유령은 있는 듯 없는 듯 떠다니는 사람 같아서.
이 글을 보면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실명을 쓰자니 좀 그렇고 가명을 쓰자니 뭐 그 정도까지 할 건 아닌 것 같아 별명을 쓴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많이도 들어본 말 일 것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왜 그리도 많은지.
국어사전에 보면 불우에는 살림이나 처지가 딱하고 어려움(불의不遇), 하늘이나 신이 도와주지 않음(불의不佑) 이렇게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택할 수 없이 다 맞다고 볼 수 있겠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불우라는 단어에는.
그럼,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떤가요? TV쇼에 자주 등장하는 이 질문을 나에게도 한 번 해본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서 꼭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웃곤 했던 기억들도 많으며 음식을 잘하는 엄마가 해주는 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안 좋은 기억은 마음속 깊이 꼭꼭 덮개로 잘 가려나 드러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어 나조차도 속아 엄마에게 말하곤 했다.
엄마. 나는 나쁜 일들은 잘 기억이 안 나. 참 다행이지.
해맑게도 말하곤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알았지만 그건 재주가 아니라 재앙이었으며 해맑은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연기를 감쪽같이 한 것뿐이었다. 꼭꼭 덮은 그것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 기어이 공황장애를 가져다주었으니 말이다. 걸려본 사람만 안다는 공황장애. 안 걸려 봤으면 말을 말아야 하는 지독하고 무서운 병이다. 공황장애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불우한 어린 시절 다음으로 많이 들어 봤을 공황장애이니.
남편 말에 의하면 내 인생에 말과 멍과 유령과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어디 어두컴컴한 방에 앉아 매우 잔인한 영화를 보며 담배 꽤나 피우며 살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아. 그의 가정이 정말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주 설득력 없는 말은 아니기에 화를 내기보다는 수줍게 말한다.
저 이제 담배 끊은 지 15년째 입니다만.
착한 친구들이었다. 모나지 않고 평범하고 성실한. 그 친구들에 비해 나는 말을 가릴 줄 몰라 자주 막말을 해댔고 이렇게 좋은걸 왜 피지 않냐며 딱 한 번만 펴보라고 싫다는 애들에게 담배를 들이밀기도 했다. 밤이건 새벽이건 전화해 나오라 진상을 부렸으며 집착도 심해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 내가 모르는 친구의 지인이라도 오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인상만 쓰다가 자리를 나와버려 친구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다 내가 어쩌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사귀면 꼭 데리고 나가 소개를 시켜 주었다. 그럴 때마다 착한 말과 멍과 유령은 자기 친구들 대하듯 잘해 주었다. 저런 또라이 같은 애랑 잘 놀아주어 고마워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참 정상적이고 착한 애들로 데려 왔다고. 저게 또라이라 그렇지, 사람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라고 하면서.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지. 저게 인복은 있다고.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가 아니라 할머니 말처럼 인복이 있어서였다. 인복 있는 나는 말과 멍과 유령과 그리고 살면서 사귀게 된 몇 안 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난 이들과의 관계의 판타지 안에서 날뛰며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누구나 줘라 하는 식으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있었다. 오래오래 살다 보니 나도 친구들도 이제 나이를 먹어 판타지 밖 세상으로 조금씩 조금씩 밀려가게 되었고 어느 날 보니, 말과 멍과 유령은 내가 낄 수 없는 또 다른 자신들의 현실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이제 나도 그들이 없는 판타지 밖 현실을 살아가야 했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던 할머니의 인복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 현실에서도 할머니가 말한 인복이 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