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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열 KI YULL YU Oct 09. 2017

떨어지지 않는 꽃이 있을까?

꽃은 피면 지게 되어있다. 봄날 눈 오듯 흩날리는 벚꽃, 아름다움이 다하기 전 시들어 지저분해지는 장미와 국화꽃, 푸른 가을하늘 아래서 춤추듯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 때가 되면 꽃은 싱싱함과 아름다움을 잃고 땅으로 떨어진다. 그것이 꽃의 일생이고 숙명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꽃이 있다. 니겔라 시계꽃이 그렇다. 볼수록 기특하다. 이 식물은 꽃을 떨구지 않는다. 꽃이 떨어지지 않는다.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꽃잎, 수술, 덧꽃부리(副花冠, Corona), 꽃받침 등을 통째로 안쪽으로 압축하여 말아 씨방아래에 붙인다. 조금 지나면 노르스름한 작은 콩알처럼 되고 그 위로 수정한 씨방이 3갈래의 암술대를 뻗은 채 올라와 있다. 열매가 익으면 아래에 딱딱한 마디처럼 되어 붙어 있다. 


추정하건데 이들 꽃잎 등이 열매가 크고 익는 데 양분으로 쓰이지 않을까 한다. 만약 과학적으로 이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니겔라 꽃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생명이 다한 후 그 몸마저 열매와 씨(후손)를 위해 다 바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하나 특이한 것은 포(苞, Bract)는 말리지 않고 떨어지지도 않은 채 수정이 끝난 어린 씨방이 커서 열매가 익을 때까지 씨방 등을 감싸고 있다. 포는 밀선(밀샘, 蜜腺)과 가시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 해충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근무하는 KVIP(한베 인큐베이터 파크)에 니겔라 시계꽃이 자란다. 학명은 Passiflora foetida이다. 속명 passiflora는 ‘passion flower 즉 정열의 꽃’과 ‘fiore della passione 즉 수난의 꽃’이라는 2가지 설이 있다. 종명인 foetida는 라틴어의 냄새가 난다는 foetid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잎을 따서 으깨어 냄새를 맡아보니 조금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베트남사람은 어린잎은 따서 먹는다고 한다. 


이 꽃이 아름다워 자주 보고 있다. 처음엔 아름다워서 관심을 가졌다가 요즘엔 그 꽃의 일생이 너무 신기하다 할까? 희생적이다 할까? 숭고하다 할까? 아무튼 다른 꽃과 남달라 애착을 갖게 되었다. 


1~3m의 덩굴성 식물이며, 덩굴손으로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거나 옆으로 기어간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5~7cm, 너비 4~5cm이며 3조각으로 갈라져 있는데 가운데 조각이 길고 양 옆의 조각이 짧은 극형(戟形, hastate)이다. 줄기 등엔 잔 가시털이 있다.    


ㅇ. 통째로는 햇살, 펼쳐놓으면 미녀 속눈썹 같은 덧꽃부리

속순썹 같은 덧꽃부리

꽃은 포, 꽃받침, 꽃잎, 덧꽃부리, 수술, 암술이 있는 갖춘꽃이다. 꽃잎은 하얗다. 덧꽃부리는 아래 2/3는 보라(핑크보라), 위 1/3은 흰색이다. 암술머리는 연한 녹색, 수술의 꽃 밥은 노랗다. 꽃받침은 겉은 녹색, 안은 흰색이다. 꽃받침 밑에서 씨방까지 짧은 원기둥은 보라(핑크보라)이며, 덧꽃부리가 햇살 같아 꽃이 활짝 피면 아름답다.


포는 3개이며 많은 가시 털 같은 것과 밀선이 얽혀 있는 모습이다. 크기는 길이 1.5~2.5cm, 너비 1.0~1.5cm이다. 이것은 열매가 익을 때까지 열매를 감싸고 있다가 익으면 시나브로 떨어져나간다.

꽃받침은 5개로 끝이 뾰족한 아래 부위가 넓은 긴 삼각형 모양이며 색은 겉 녹색, 안 흰색이다. 크기는 길이 1.4~1.8cm, 밑변 너비 0.5~0.8cm이다.


꽃잎은 5개로 꽃받침과 모양은 비슷하며, 색은 안팎 모두 희다. 크기는 길이 1.0~1.5cm, 밑변 너비 0.4~0.7cm이고 얇다. 꽃잎은 꽃받침이 딱 붙어 감싸기 때문에 한 몸처럼 되어있어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다.

덧꽃부리는 바늘모양이며, 50~60개가 2줄로 원을 이루어 꽃받침 원기둥 아래 붙어 있다. 1개의 크기는 길이 0.9~1.2mm, 지름 1mm미만이다. 덧꽃부리를 통째로 떼어 놓으면 햇살 같고, 펼쳐놓거나 2~3조각으로 잘라놓으면 영락없이 미녀의 아름다운 속눈썹 같다. 


수술은 5개이고 씨방아래 꽃받침 위 기둥에 붙어 위로 올라온다. 색은 수술대는 백록색, 꽃 밥주머니는 납작한 타원이며 꽃가루는 노랑이다. 암술은 씨방위에서 나오며 3 갈래, 암술대는 백록색, 암술머리는 원형이며 녹색에 가깝다.    


ㅇ. 평소에는 암술이 수술 위, 꽃가루받이할 때는 수술이 암술 위로 올라 마주봄    

초기에는 암술이 수술 위로 솟아 있으나 꽃가루받이를 할 때는 암술대가 아래로 휘어져 암술머리가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수술은 조금 위로 솟는다. 그래서 암술이 수술 꽃밥 주머니 아래로 내려가 서로 마주본다. 외설스럽지만 평소에는 여성상위로 지내다 꽃가루받이할 때는 여성하위 자세를 취한다. 암술과 수술이 옆으로 다가가 나란히 서로를 마주보기도 한다. 얼마나 신기한가!     


ㅇ. 꽃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꽃잎, 수술, 덧꽃부리를 꽃받침이 압착하여 말아서 씨방 아래에 붙여놓은 것을 포가 싸고 있음

꽃가루받이가 끝나도 꽃잎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꽃받침이 꽃잎, 덧꽃부리, 수술을 감싸 안쪽으로 말아 압축하여 씨방아래에 붙인다. 그 위에 수정이 된 씨방은 암술대를 달고 뽐낸다. 가시망(網) 투구처럼 생긴 포(꽃싸개)는 이 모든 것을 감싼다. 열매를 해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서 씨방은 포의 보호를 받고 꽃잎까지 먹으며(?) 안전하게 열매와 씨로 성숙한다. 후대가 이어지는 셈이다.


열매

열매는 둥글고, 오렌지, 주홍 또는 주항 색이다. 크기는 지름0.9~1.5cm이다. 익어도 껍질이 벌어지지 않는다. 껍질은 0.2mm정도로 얇고 부드럽다. 과육은 적으며 한천 같으며 약간 짠 맛이 난다. 1개 열매에는 10~30개의 씨가 들어 있으며 과육이 씨를 감싸고 있다.





씨는 아래가 좁은 납작한 사다리 모양이며, 위 끝은 얕게 3갈래로 갈라져 있고 가운데 조각이 조금 크다. 어찌 보면 올빼미가 연상된다.

씨를 감싼 과육은 마르면 비닐처럼 되어 떨어진다. 크기는 길이 2~3mm, 너비 1.5~2.0mm, 두께 0.5mm정도다. 씨는 광택이 없고, 겉은 매끄럽지 않고 곰보 같다. 물에 가라앉는다.


아름다워서 꽃이 좋다. 그런다고 너무 아름다움만 쫒지 말자. 아름다움보다 더 소중한 지혜를 놓치면 후회한다.


니겔라 시계꽃은 꽃을 떨구지 않는다.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으니 끝(떠날 때)도 깨끗하고 아름답다. 추정이지만 꽃잎, 수술 꽃받침을 먹으며 열매가 익는다면 그 씨앗(자식) 사랑은 인간의 모성보다 한 수 위가 아닌가? 꽃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꽃의 아름답고 깨끗한 마지막 보내기와 후손 사랑도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필자 주

1. 니겔라 시계꽃이라는 한글 이름은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나 마땅한 이름이 없고 현재 많이 불러지고 있어 사용했다.

2. 베트남 말로는 chùm bao 또는 Lạc tiên 라 하며 민간에서는 불면증 치료에 이용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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