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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열 KI YULL YU Oct 15. 2017

베트남 시장엔 에누리나 덤은 없다

물건을 사고 팔 때는 대개 흥정을 한다. 사는 사람은 질 좋은 것을 싸게 사고, 파는 사람은 제값을 받고 팔려다 보니 거래할 때 흥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베트남 시장에서는 공산품은 아예 가격이 정해져 있고, 포장되지 않은 농축수산물은 마트와 재래시장 다 저울이 가격을 정한다. 저울이 무게를 달아주면 거기에 품목의 Kg가격을 곱하면 그게 값이다. 깎아달라고 할 틈이 없다.


물론 값을 에누리(할인, Discount) 해달라거나 과일 등을 덤으로 달라고 해봐도 소용이 없다. 에누리와 덤이라는 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대형마트는 포장해서 무게를 다는 사람과 계산하는 사람과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에누리해달라고 하거나 덤을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일반 재래시장은 무게를 다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같지만 에누리와 덤을 말하면 대꾸도 안 한다. 다만 저울에 나타난 무게를 보며 값을 이야기 하거나, 나같이 베트남 말을 못하면 값에 해당되는 돈을 꺼내어 보여줄 뿐이다.


이 때문인지 재래시장조차 삭막하게 느껴진다.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난다. 너무 사무적이고 기계적이다. 이럴 때는 아프리카 르완다 재래시장에서 바나나, 아보카도, 양파 등을 사면서 더 달라하면 웃으면서 한두 개 덤으로 얹어주던 아주머니의 넉넉함이 그리워진다.


요즘엔 시장에 가면 에누리나 덤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아예 흥정할 생각조차 안 한다. 다만 저울 바늘이 가리키는 눈금을 읽을 뿐이다. 그리고 달라는 대로 값을 지불한다.  


아주머니가 덤으로 준 쪽파와 산 쪽파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했다. 시장에 가면 자주 들르는 채소가게가 있다. 양파, 당근, 감자, 대파, 무, 배추 등을 여러 번 사다 보니 아주머니가 이제 나를 알아보는 모양이다.


여느 때와 같이 채소를 사는 데 내가 사지 않은 쪽파 몇 개를 넣어주는 것이었다. 사지 않은 것이기에 얼마를 주어야 되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덤으로 채소를 처음 받은 셈이다. 자기 물건을 자주 사주는 나에게 시장 아주머니는 마음속으로는 고마워하고 있었나 보다. 그 속마음을 나에게 들킨 셈이다.  


나도 그냥 웃으며 깜온(Cảm ơn, 고맙습니다)이라고 말하고 받았다. 이래서 세상은 살맛이 난다. 너무 완벽하고 빈틈없는 것 보다 좀 허술하고 여유 있는 것,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세상이 더 좋다.


사람의 고마워하는 마음은 세상 어디서나 같은 가 보다. 깎아달라고 하지 않아도, 좀 더 달라고 하지 않아도 고마움을 알고 더 주니 말이다. 


시장 아주머니는 아마도 시장의 규범과 제도 때문에 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에누리도 안하고 덤도 주지 않는지 모른다. 법과 제도를 지켜 상거래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정에 매여 혼자만의 이익을 취하며 거래질서를 혼란하게 하는 것보다 나음을 알기 때문일 거다. 


베트남 시장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저울이 가격을 정하고, 그 가격에 물건은 사고 팔릴 것이다. 하지만 장사하는 베트남인은 마음 깊은 곳에 사가는 손님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마운 마음은 있어도 규범을 지켜 질서를 유지하느라 드러내놓고 표현을 안 할 뿐이기 때문이다. 


고마워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좋다. 그러나 때로는 쉬 표현하기보다 마음 속 깊이 오래 품고 있는 것도 필요하다. 눈과 얼굴, 표정만 보고도 상대가 고마워하고 있음을 알게 될 때까지. 그러면 그럴수록 좀 느리기는 하지만 세상이 더 살만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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