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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열 KI YULL YU Feb 26. 2018

나무들의 물무덤, 네악 페안 호수

수천수만 그루의 나무들이 네악 페안(Neak Pean)호수에 죽은 채 서 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나뭇잎이 없다. 맑은 하늘에서 햇빛이 비쳐도 호흡하지 못한다. 꽃과 열매 이야기는 먼 옛날의 전설이 되었다. 


호수 속의 죽은 나무들

호수 주변에 댐을 만든 탓에 물 수위가 높아져 그곳에 살고 있던 나무들이 산채로 물속에 묻혔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들은 죽었다고 한다. 거대한 나무들의 물 무덤이다. 댐을 만든 사람들은 이런 참혹함을 왜 예상 못했을까? 

숲을 좋아하고 풀 한 포기에도 고마워하는 나에겐 충격이었다. 인간의 무지몽매함이 안타까웠다. 과학문명은 눈부시게 발달해도 인간은 왜 지혜로워지지 못하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식물이 없으면 인간은 살지 못한다. 왜 인간은 이 사실을 모를까?


캄보디아 시엠 립에는 네악 페안(Neak Pean) 사원이 있다. 12세기에 자야바르만 7세가 인공호수를 만들고 그 안에 인공 섬을 만든 다음 그곳에 지은 불교사원이다. 왕은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믿는 불교사원을 지었으나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는 힌두교가 대세였으며, 대다수 백성들이 힌두교를 믿었지만 왕의 효성과 백성사랑이 커서 불교사원을 짓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단다. 


호수를 가로지른 나무다리

옛날에는 배를 타고 인공호수를 건너다녔다는데 지금은 폭 약1.5m, 길이 약1km의 나무다리 위를 걸어서 오간다. 호수 위로 쭉 뻗어 길게 난 황토 빛 나무판자 다리는 정겨움과 시원함을 함께 가져다준다.


네악 페안(Neak Pean, Neak Poan)은 ‘휘감은 뱀들-Entwined Serpents’이란 뜻으로 중앙 신전(탑) 기단(基壇)을 머리가 7개인 2마리 나가(Naga-Sanskrit 또는 Pali어로 뱀 특히 코브라를 뜻함)가 휘둘러 감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 


인공호수 안에 인공 섬, 인공 섬 안에 거의 정사각형의 인공 연못 5개가 있다. 중앙 큰 연못 가운데에는 큰 신전이 있다. 중앙 신전은 8층으로 겉에는 여러 불상과 부처의 일생이 조각되어 있다. 신전 동쪽엔 용(龍) 2마리의 머리, 서쪽엔 2마리 용(龍)이 함께 꼰 꼬리의 조각상(彫刻像)이 있다. 


중앙연못 동서남북의 작은 연못 4개에는 작은 신전이 1개씩 있다. 작은 신전은 동쪽에 사람(대지, 흙을 상징), 서쪽엔 말(바람), 남쪽엔 사자(불) 그리고 북쪽엔 코끼리(물) 머리 조각상을 모셔놓았다. 이들 조각상이 도관(導管-Conduit or pipe) 역할을 하여 중앙 큰 연못과 작은 연못의 물이 이동한다. 

사원 전체는 물 위에 피어 있는 하나의 연꽃을 연상시킨다.


네악 페안 사원

네악 페안 사원은 건기와 우기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물이 적은 건기에는 중앙 신전 기단을 둘러 감은 나가(Naga)가 보이고, 5개의 신전 안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고 하나 지금은 물이 많아 직접 보지 못했다. 대신 물이 많은 때는 적은 때보다 풍경이 훨씬 아름답고 멋지고 신비롭다.


네악 페안 사원은 치유의 사원이다.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성수(聖水, holy water)로서 이 물을 마시거나 적시거나 연못에 들어가면 몸의 균형이 회복되어 병이 낫는다고 한다. 이런 치유원리는 고대 힌두의 균형에 대한 믿음에서 왔다.


나무다리를 걸어가면서 호수를 보니 아 이게 뭐람~! 호수에는 죽은 나무들이 가득했다. 물 위로 나와 있는 하얀 줄기와 가지는 하얀 뼈 같았다. 호수와 그 위로 놓인 나무다리의 운치와 낭만을 즐길 겨를도 없이 그만 안타까움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순간 오싹함마저 엄습했다. 나만 이랬을까? 


호수 속에서 자라는 어린 맹그로브 나무

그러나 다행이다. 늦게라도 잘 못을 알고 호수에 물속에서도 사는 맹그로브(Mangrove) 어린나무를 심어 잘 자라고 있다. 맹그로브가 바닷물, 물속, 갯벌 등에서 자라는 이유는 기근(氣根-Aerial root)이 많아 이들 지역에서도 호흡이 가능하고 내염성(耐鹽性, salt tolerance)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무들 물무덤인 네악 페안 호수가 맹그로브 숲으로 우거진 모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호수 속 숲, 숲이 우거진 호수, 그곳에서 물고기와 새들이 어울려 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환상적이고 기분 좋다. 훗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다시 와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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